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위치한 보원사지. 작은 사진은 보원사지 한 가운데 늠름하게 서 있는 보물 제104호인 오층석탑.

[편집자주] ‘충곡의 역사文化산행’=등산+역사文化유적지 탐방+맛집기행

임도혁 대전언론문화연구원 이사장(전 조선일보 충청취재본부장)은 오래 전부터 등산, 사진촬영, 문화재 등에 관심을 갖고 전국을 누벼왔다. 임 이사장은 최근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의 산행대장을 맡아 역사문화산행을 기획, 지난 18일 처음으로 경주를 다녀왔다. 임 이사장이 만든 ‘역사문화산행’은 역사문화 유적지 답사와 산행, 지역 맛집까지 하나로 결합시켜 처음으로 시도한 새로운 산행이면서 신개념 여행이다. ‘알고 보면 즐겁다’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앞으로 월 1회 게재한다.

3. 보원사지(普願寺址)

사적 316호.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

용현계곡을 따라 국립용현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좁은 계곡 주변임에도 오른쪽에 100,000㎡가 넘는 꽤 널찍한 공터가 있다. 보물 5점이 흩어져 있는 보원사지이다. 화려했던 옛 영화를 상징하듯 유물들의 풍모가 예사롭지 않다. 보원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 사이인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서산 아라메길’을 따라 내려왔기에 법인국사탑 및 법인국사탑비부터 구경을 한다.

①법인국사탑(法印國師塔)

보물 제105호. 법인국사탑은 오른쪽에, 법인국사탑비는 왼쪽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팔각원당형으로 안상, 사자상, 용과 구름, 연꽃, 사천왕상 등 갖가지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몸돌에 비해 지붕돌이 커서 무거운 느낌을 주지만 늘씬한 키와 함께 귀꽃이 경쾌하게 위로 솟아오르면서 무거움을 조금 덜어준다.

②법인국사탑비(法印國師塔碑)

보물 제106호. 승탑과 비 둘 다 원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어 여간 다행이 아니다. 다니다보면 승탑보다 탑비가 사라진 경우가 많아 안타까움을 자아내기 일쑤이다. 직사각형으로 잘 다듬어져 있기에 누군가 이를 가져다 건물 주춧돌이나 섬돌 등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사실 승탑은 예술적인 가치가, 탑비는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더 크다. 그렇기에 나로서는 탑비가 사라진데 대해 더 아쉬움이 크다.

이 비 역시 법인국사 행적에 관한 기록이 소상히 적혀 있어 사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귀부(龜趺)가 빈약하고 조각이 형식에 치우쳐 조형미에 대한 감흥은 떨어진다.

③보원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104호. 보원사지 한 가운데 늠름하게 서 있는 보원사지의 얼굴마담이다. 잘 균형 잡힌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튼실한 2층 기단과 기울기가 완만한 지붕돌에서 신라와 백제의 양식이 혼합돼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묵직한 안정감과 경쾌한 상승감을 함께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이 탑에서 빼놓지 말고 꼭 뜯어보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아래층 기단의 사자 12마리와 위층 기단의 8부중상이다. 용, 긴나라, 마후라가, 천, 가루라, 야차, 건달파, 아수라… 긴 세월의 풍파에 조각이 조금 무뎌졌지만 그 섬세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안내판의 그림과 조각을 대조하면서 하나하나 이름을 찾아보노라면 즐거움이 썰물처럼 밀려든다. 아침이나 해질 무렵 햇빛이 비스듬히 쏟아질 때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는 탑은 폐사지의 쓸쓸함과 어울려 참으로 아름답다.

④석조(石槽)

보물 제102호. 한쪽 구석에 있어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다. 큰 돌을 긴 네모꼴로 다듬고, 그 안을 또 긴 네모꼴로 파냈다. 길이 3.5m, 높이 90㎝나 되는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4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이다. 거대한 크기에 단단한 화강암,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 깊이에 이르도록 정으로 한 손 한 손 따냈을 석공의 땀방울을 생각하면 그만 정신이 아득해진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는 법. 한 두 군데 금이 가 있는 모습은 그래서 안타까움보다 천년 세월의 유장함을 느끼게 한다. 안팎에 아무런 장식이 없어 오히려 장중한 맛을 지니고 있으며 바닥 한쪽에 물이 빠지는 구멍만 냈을 따름이다. 

⑤보원사지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103호. 비포장 길에서 10m쯤 걸어 들어가면 폐 절터의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는 당간지주(보물 제103호)를 만난다. 늠름하게 우뚝 치솟은 풍채가 여간 당당하지 않다. 두 돌기둥에는 단순한 테두리를 길게 둘러 멋과 힘을 둘 다 잃지 않았다. 듬직한 2단의 기단 위에는 당간을 받치는 간대(杆臺)가 온전하게 남아 있다. 매끈하면서 유려한 모습이다.

지난 여름 찾았을 때 개망초 꽃이 하얗게 주변을 덮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해질녘의 햇빛이 하얀 꽃과 어울려 몽환적 풍경을 자아냈던 기억이 선명하다. 한겨울에 바라본 당간지주는 차갑고 쓸쓸한 모습으로 돌변했다.

  1.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 회원들이 마애삼존불을 찾아 임도혁 산행대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국보 제84호.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0.

삼불 김원용 교수가 ‘백제의 미소’라고 부른 이래 자타가 공인한 이름이 됐다. 사실 이 불상은 백제시대의 초기 불교유적이라는 점, 독특한 삼존불 배치 등 역사적 가치가 크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불상의 가치는 뛰어난 조형미와 환한 미소에 있다. 세 불상 모두 한결같이 천진난만한 표정에 웃음을 조용히 머금고 있다. 본존불은 자애롭고, 두 협시불은 귀엽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보는 순간 저절로 따라 웃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온화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으며, 단정하면서도 유려한 모습에서 백제의 세련된 조형미를 느낄 수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와 일맥상통하는 아름다움이다.

마애삼존불은 과학적으로 따져 봐도 훌륭하다. 1,400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지났어도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이유이다. 커다란 바위가 지붕 역할을 하며, 삼존불을 새긴 바위 벽면은 80도 정도 앞으로 기울어져 비를 막아준다. 삼존불의 형태는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보살입상과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법화경’의 석가모니와 제화갈라보살(왼쪽 봉보주 보살입상), 미륵보살(오른쪽 반가사유상)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산 용현리마애삼존불은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제307호)과 함께 백제시대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공주·부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당시의 문화 교류 상황도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훼손 상태가 너무 심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는, 보존상태만 좋다면 능히 국보급인 예산 화전리 사면불상(보물 제794호)도 비슷한 시기, 비슷한 목적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나오며

두 번째 역사문화산행이다. 종산제를 지낼만한 장소가 있으면서도 역사문화유적지를 답사할만한 곳이란 두 마리 토끼를 훌륭하게 잡았다고 자평한다. 날씨까지 따뜻해 고생하지 않고 종산제를 지냈으니 분명 복이다.

유적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곁들여 구경을 하니 이해도가 높아지니 많은 분들이 만족해하신다. 문화유산해설사 설명을 들으면 더 쉽고 풍부하게 알 수 있는 것과 같으리라. 대전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예상보다 늦어져 오늘 밤 있을 송년회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