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고광률은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 1990년 엔솔로지(아버지의 나라』 실천문학)에 통증으로 등단 이후장편소설 오래된 뿔(은행나무등을 발표하였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서울에서 잡지사 정치 관련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대중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출강을 하고 있다.

언론을 꼬나보면 권력이 사악해져

이명박은 2008년 3월 17대 대통령이 되면서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를 합쳐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들었다. 정보통신부는 정부산하조직이었고, 방송위원회(방송위원회는 방송관계 전문가 및 학식·경험과 덕망이 있는 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위원 중 3인은 국회의장이 추천한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추천한 자를 임명하였다)는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살펴 심의 의결하는 합의체적 성격의 기구였다.

그러니까 권력과 민심의 중간지대에서 형평성과 공정성, 합리적 근거에 의해 방송을 감시해야 할 기구를 정부기구로, 그것도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수장에 최시중(지금은 재임시절의 여러 비리가 발각되어 감옥살이를 한 바 있다)을 앉혔다.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이 이때부터 무저갱 같은 저수지로 빨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의 맨토라고 하는 그 최시중은, MB에 충성하여 자기 이득을 챙기려는 욕망에 국민의 ‘생각’을 통제하는 ‘위대한’ 발상과 실행을 통해 대한민국 방송언론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MB가 다스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나랏돈과 여러 기업돈을 마구잡이로 말아 먹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맨토 최시중의 죄가 결단코 적지 않다. 최시중은 방송을 제물로 MB의 시중을 들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박근혜에게 김기춘이 있었다면, MB에게 최시중이 있었던 것인데, 그의 언론 장악 죄악은 아직도 진행형인지라 그 죄질과 크기가 김기춘을 압도한다.

감시와 비판과 견제가 없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망하게 되어 있다. 인간이 스스로의 과오를 다스리고, 치솟는 욕망을 제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즉,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그리고 세상 이치와 순리는 그리 엉성하지 않아서, 지금 좋다고 해서 영원히 좋지 않고, 지금 나쁘다고 해서 영원히 나쁘지 않다. 수단과 방법에 따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물귀신처럼 따라붙는다는 뜻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까지 사조직인 양 조정하여 방송언론을 틀어막고 감추고 변명하고 우겨가면서 차근차근 디테일하게 이것저것 해먹을 때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세상에는 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낮도 존재한다. 빛을 받으니 부하뇌동 했던 언론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과거의 비리 족적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통제·장악으로도 못 막자 청부민원까지

언론은, 그 중 특히 방송언론은 대중에 대한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대단하다. 얼마나 대단하면 페이퍼 신문의 제왕이자 부자인 조선일보가 종편에 ‘목숨’을 걸고 덤벼들어 따냈을까. 이런 방송언론을 MB와 최시중이 짝짜꿍하여 통제를 한 것이다. 어쩌면 최시중이 알아서 다 했을 것이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볼 수 있다. 방송에 안대를 씌워 가려버리고 정권이 일러주는 방향으로 보도하게 한 것과 색안경을 선물해 그 색깔을 깔고 취재와 보도를 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가증스럽고 천인공노할 만한데, 이것으로도 놓치거나 안 되는 것은 방심위의 시청자 민원 제도를 적극 악용하여 대처했다고 한다. 이른바 ‘청부’ 민원을 넣어 권력의 입맛에 따라 심의 의결토록 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저 놈이 내 맘에 안 든다고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서 똘마니를 대신 보내 으름장을 놓고 필요하다면 적당히 손도 봐줬다는 것이다. 이게 정치권력이 할 짓인가.

더욱 놀랍고 ‘재미있는’ 것은 그 청부 민원도 외부자가 한 것이 아니라, 내부자인 방송기획심의팀장을 시켜 했다는 것이다. 초딩도 이렇게는 안 할 것 같다. 이 팀장은 나름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래서 전 위원장, 전 부위원장의 지시를 받아 했다고 까발린 것이다. 그러니까 자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상관의 지시’ 때문에 벌인 대리 민원 쇼였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이 해당 팀장은 자신이 하는 짓이 무슨 짓인지 모르면서 했다는 얘기다. 이런 자가 방송기획심의팀장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이 자처럼 사익을 위해 공동 범죄를 벌이다가 들통이 나면 어떻게 해서든지 빠져나가려고 ‘동지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자들이 더 나쁘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개입이 없었으면 죄악 자체가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언론을 핍박 말라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이 왜 자신은 언론이 없는 정부(국가)보다는 정부가 없는 신문(언론)을 택하겠다는 말을 했겠는가. 감시 비판 견제가 없는 정부(정권)은 권력의 무한욕망에 휘둘려 반드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이다. MB와 최시중은 언론공학적 지혜와 정치권력으로 언로를 물샐 틈 없이 틀어막았는데, 그 막힌 언로 때문에 비리와 불법 그리고 민심과 여론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저수지가 되었고, 마침내 그 둘은 자신들이 만든 이 저수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이 무저갱 저수지는 MB의 멘토 최시중이 꽃길을 깔아주느라 앞장서서 만든 것인데, 멘토 잘못 만난 멘티는 이제 수장당할 판이 되었다. 최시중이 판 이 저주받을 저수지를, 박근혜가 얼른 메웠더라면 그녀도 그 저수지에 빠져 허덕일 운명은 피했을 것이고, 이명박도 뒤늦게 그 저수지에 빠질 일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라는 농담 같은 생각이 는 건 왜일까.

이명박과 최시중의 간교한 언론 장악이 우리 시대에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언론을 핍박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