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고광률은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 1990년 엔솔로지(아버지의 나라』 실천문학)에 통증으로 등단 이후장편소설 오래된 뿔(은행나무등을 발표하였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서울에서 잡지사 정치 관련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대중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출강을 하고 있다.

상식 위에서 시작하라

도덕 기준은 하나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인데,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보수의 도덕성과 진보의 도덕성에 적용하는 기준이 각각 다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지만, 현실이 그렇다. 보수는 때나 티가 묻어도 되고, 진보는 흠결 없이 깨끗해야 한다. 보수가 짜서 진보에 적용하는 프레임인데, 국민들도 이 프레임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도덕이 정치이념적 기준으로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인지 몹시 의문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래서 진보는 보수가 정해 놓은 도덕성 프레임에 말리면 쫄딱 망한다.

박근혜의 (대부분 침실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세월호 7시간 30분을 극구 두둔하고, 법치국가에서 법으로 탄핵된 대통령을 옹호·비호·찬양하는 국회의원(자유한국당 김진태)이 KBS 사장후보 인사청문회에서 세월호 참사당일 프로그램제작 관련 뒤풀이로 노래방에 간 것을 문제 삼아 후보를 사퇴하라며 윽박지르고 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술을 먹고 노래방에서 가무(춤을 췄는지는 어찌 알았을까)를 했으니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법을 전공했다는 60세 이전인 이 국회의원은 원인, 이유, 근거, 기준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일단 내 직성(스타일)에 안 맞으면, 무조건 싫은 것이다. 그 직성(스타일)이 자의적 이념이다. 또 자기 맘에 안 드는 발언을 했다고 라디오 패널 출연자에 대한 국가자격증을 줘야한다고 주장하는 의원(자유한국당 홍문표)도 있다. 자기 당 의원들의 극언, 망언, 억지, 땡깡 등으로 상식 있는 건전한 국민이 고통 받는 것은 생각지 않고, 타인의 주장이 당리당략에 어긋나고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한 말이다. 이런 판단 기준은 대체 어떤 이성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뿌리를 알고 싶다.

법은 지켜라

법치국가에서 법을 만들고, 누구보다 솔선수범해서 지켜야할 국회의원이, 법을 아예 무시하고 법질서를 깔아뭉개도 혼수상태에 빠진 양 아무 말이 없고, 되레 도덕적 기준을 칼처럼 휘두르며 정적(政敵)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걸 보면 도덕 기준이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들과 무관하지 않은, 아니 매우 유관한 전직 대통령 둘이 구속되었는데, 조사도 출석도 모두 거부하고 있다. 그러니까 법에 따라 밝혀진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 째라는 것이다. 시정잡배도 이렇게 법을 대놓고 무시하지는 못한다. 괘씸죄에 법정 모욕지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법에 따라 일국을 다스렸다는 대통령이 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법에 따라, 아니 법 그 이상의 수단을 동원하여 국민을 속이고 핍박했던(하나는 국민의 생명을 업신여기고, 나랏돈을 함부로 썼으며, 다른 하나는 대통령의 권한을 사적 치부에 활용했다) 그들이 정작 자신들은 그 법에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대통령을 두둔하는 정당이 국민을 대변하고 있다니, 그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일이다. 그것도 완전 두둔이 아니라, 상황을 봐가면서 두둔을 하니까 뻔뻔함을 넘어 안쓰럽기도 하다.

상식 위에서 시작하면 산다

내 눈의 들보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되레 정당화하고 자랑하며, 남의 눈의 티를 문제 삼아 끝장을 보려고 덤벼드는 국회의원이라니…….

정당이 민의와 여론을 무시하고 부초처럼 떠돌며 억지와 트집과 ‘깽판’을 부린다면 나라꼴이 어찌 되겠는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이다. 아니 알면서도 무시하는 뻔뻔함의 차이일 것이다. 정말 자유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을 돕기 위해 창당한 정당인가 싶기도 하다. 자유한국당의 어처구니없는 언행들 덕에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굳건해진 것이 아닌가. 자유한국당의 당 내에 ‘잠입해서 뇌를 점령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원들을 하루속히 솎아 내야 할 것이다. 사람이 뻔뻔해지면 피아 구분에 장애가 생기는 법이다. 왜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닦아서 가지 않고, 더불어민주당이 가는 길에 끼어들어 헤매고 있는 형국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견제도 상식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식도 없고, 염치도 없고, 방향도 없고, 비전도 없는데 누구 이들을 믿고 따르겠는가.

자유한국당은 더 이상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충성’을 그만하고, 어서 제정신을 차려 국민행복을 추구하는 보수정당으로서의 제 몫을 다해주길 바란다. 그러려면 우선 상식 위에서 다시 시작하라. 국민은 보수와 진보, 두 개의 날개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