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 회원들이 산행을 마친 뒤 국보 제40호 정혜사지 13층석탑을 둘러보고 있다. 작은 사진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자연과 벗했던 독락당 내 ‘계정’.

[편집자주] ‘충곡의 역사文化산행’=등산+역사文化유적지 탐방+맛집기행

임도혁 대전언론문화연구원 이사장(전 조선일보 충청취재본부장)은 오래 전부터 등산, 사진촬영, 문화재 등에 관심을 갖고 전국을 누벼왔다. 임 이사장은 최근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의 산행대장을 맡아 역사문화산행을 기획, 지난 18일 처음으로 경주를 다녀왔다. 임 이사장이 만든 ‘역사문화산행’은 역사문화 유적지 답사와 산행, 지역 맛집까지 하나로 결합시켜 처음으로 시도한 새로운 산행이면서 신개념 여행이다. ‘알고 보면 즐겁다’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앞으로 월 1회 게재한다.

1. 정혜사지(淨惠寺址) 십삼층석탑
국보 제40호.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654.

장산서원 뒤편 산행 날머리에서 10분쯤 걸어 내려오면 오른쪽에 자태를 살짝 숨기고 서 있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즈음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은 13층이라는 층수에 1층 몸돌과 지붕은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급격히 작아지는 특이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조형미가 뛰어나다. 국보 제20호 불국사 다보탑, 국보 제35호 화엄사 4사자삼층석탑과 함께 대표적인 이형석탑으로 꼽힌다.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은 폐사지에 홀로 외롭게 서있는 석탑이다. 회재 이언적이 독락당에서 지낼 때 정혜사 스님과 꽤 가까운 교류가 있었다고 하니 임진왜란, 병자호란 양란을 겪으면서 건물이 불에 타고 이후 중건을 하지 못해 문을 닫았을 것이다. 이곳에 있던 석등 부재가 옥산서원에 가 있는 점으로 미루어 무거운 석탑만 홀로 남았고 쓸 만한 것은 다 없어졌으리라.

아~ 만추의 폐사지, 오랜 세월 홀로 서 있음에도 고고하면서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는 정혜사지13층석탑이여! 쓸쓸한 만추여서 더 아름다울까? 다음에는 한겨울 눈을 이고 있는 너를 만나 가을의 너와 겨울의 너를 비교해보리라. 10개가 넘는 지붕을 타고 빗방울이 또르르 굴러 내려가는 모습도 그에 못지않을 터이니 여름 아침 비온 뒤의 너도 구경해야 하겠지? 한밤중에 너를 그리며 듣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 2악장. 그 처연한 아름다움에 젖어본다.

2. 독락당(獨樂堂)
보물 제413호.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300-3 (옥산리)

정혜사지13층석탑에서 다시 5분쯤 내려오면 된다. 계곡 숲 한쪽에 자리잡은 번듯한 양반 가옥이다.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보물로 지정된 양반 가옥은 그리 흔치 않다. 더구나 이 집은 보물 제586호 ‘이언적 수필고본 일괄(李彦迪 手筆稿本 一括)’, 보물 제526호 ‘여주이씨 옥산문중 유묵-해동명적(驪州李氏 玉山門中 遺墨-海東名蹟)’도 보유하고 있다. 또 천연기념물 제115호 조각자나무가 마당 한가운데서 자라고 있으니 보통 집이 아니다.

독락당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독특한 건물배치에 있다. 홀로 즐긴다[獨樂]는 뜻처럼 건물 구조가 폐쇄적이다. 문을 측면에 작게 내 외부인에게 쉽게 그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다. 계정(溪亭)은 또 어떤가? 사랑채 성격의 독락당(옥산정사) 뒤에 살짝 숨어 있어 여기까지 온 손님이라도 계정의 존재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렇듯 번잡한 속세로부터 몸을 숨기고 싶은 회재지만 자연에게는 마음을 활짝 열어뒀다. 내가 자연에 다가갈 뿐 아니라 자연을 내게 끌어들이는 쌍방향 소통 구조를 만들었다. 담장 속 살창, 계정(溪亭) 그 여유로움과 멋스러움이여.

지난 늦여름 이 집 역락재에서 하루 묵을 때 봤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계정 앞 너럭바위에서 어느 남녀가 돗자리를 깔고 한사람은 앉아서, 한사람은 누워서 유유자적하던 모습. 참으로 한쌍의 남녀가 계정 앞 시냇물, 숲과 한데 잘 어울렸다. 이런 여유를 갖고 와야 제 멋을 느낄 수 있거늘. 지금을 사는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휙 둘러보고 지나쳐 버린다. 수박 겉핥기가 아니라 수박을 단 0.1초 쳐다보고 마는 꼴 아닐까? 모자 하나, 신발 한 켤레를 살 때면 꼼꼼히도 살피면서.

파직당한 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석씨 부인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며 6년여 성리학을 연구하던 곳, 훗날 유배지 강계에서 사랑하는 아들 전인(全仁) 손에 의해 주검으로 돌아온 이곳, 문묘 배향이라는 조선시대 최고의 영예에 오른 회재 이언적(1491~1553)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나중에 다시 가져봐야겠다.

회재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 양 끝에서 살짝 치켜올라간 강당 지붕선이 경쾌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3. 옥산서원(玉山書院)
사적 제154호.

독락당에서 걸어 5분 거리이다.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된 전국 47개소 중 하나이다. 이런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옥산서원은 그 자체로 구경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폭포, 바위, 울창한 숲, 둥글게 둘러싼 산세 등 아름다움의 요소를 고루, 무엇 하나 빠짐 없이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옥산서원의 건물배치와 강당을 사랑한다. 폐쇄적이면서 손바닥만한 서원 마당,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시간 마당 한 가운데 서 있을 때 찾아드는 상념의 느낌은 그 무엇이라 표현하기 어렵다. 어디선가(정혜사로 짐작된다) 가져온 석등으로 만든 정료대, 마당 한켠에 수줍은 듯 서 있는 정료대의 감흥은 스러진 영화(榮華)의 상징과도 같아 처연하기까지 하다. 글 읽은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오는 듯한 강당 ‘구인당’, 그 어디보다 엄숙한 공간이거늘 그 지붕선은 왜 살짝 들어 올렸을까?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이 치맛자락을 들어올려 남심을 저격하거늘 왜 이렇게 아름답게만 보일까?

하지만 이런 기분좋은 감흥은 곧 산산조각 깨져나간다. 서원 옆 ‘옥산서원유물관’을 보면서. 정확한 건물 준공연도는 모르겠지만 5년도 넘었다. 그러나 늘 문이 닫혀있다. 독락당 안에는 10억원의 국비지원을 받아 ‘회재유물관’이 건립돼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집 안에 있는 바람에 대부분 문이 잠겨 있고, 전시물도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대부분 조악한 수준의 모조품 또는 판넬(사진, 설명)들. 도대체 누가 국민의 혈세를 이렇게 낭비한단 말인가! 일그러진 건축, 운영에 대해 과연 누군가 책임을 졌을까? 언제 정상화될까? 전국 곳곳에 지은, 짓고 있는, 지을 예정인 이런 성격의 건물들은 참으로 많다. 우리가 낸 피 같은 세금이 이렇게 줄줄 샌다.

*경주 도덕산-봉좌산 3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