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 대표는 "북핵 문제는 실질적으로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의 입장만 대변한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국민과 함께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편집자주]고광률은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어둠의 끝통증에 이어 장편소설 오래된 뿔』 등을 발표하였다정치 담당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영화와 시사 관련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흥분은 이적행위다

구별 능력이 없고 도(度)를 지키지 못하면 세상살이가 난망하다. 갑남을녀 사이에서 이런 사람을 보면 미친 놈, 대책 없는 놈, 꼴통 같은 놈 등등이라며 나무라고 한데 섞이려 하지 않는다.

똥 이야기에 관심 있어 하는 짓궂은 어린아이로부터 이런 옛날이야기를 들어 봤을 것이다. 아래 개울에서 빨래를 하던 할멈이 둥둥 떠내려 오는 무언가를 건져 저녁에 된장국을 끓여 상에 올렸다. 할아범이 된장의 출처를 묻자, 빨래하다 떠내려 오는 것을 건졌다고 일렀다. 그러자 할아범이 대경실색하며 하는 말, 그건 밭일하다가 급하게 싼 내 똥이야. 당연히 할아범으로부터 된장의 실체를 알게 된 할멈은 된장국을 상에서 내렸다. 정상적인 할멈이었던 것이다.

 이 옛날이야기에 한국 사회의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과 일부 권모술수에 능한 언론인들의 언행을 비추어보면 무언가 느끼는 게 있지 않은가. 똥과 된장이 있고, 그 실체를 가려야 한다면, 연역적으로 따지고 살펴봐야 할 터인데, 일단은 먼저 자신들이 필요한(원하는) 사물(실체)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고는 아전인수·조삼모사·침소봉대를 하는데, 똥을 된장으로, 된장을 똥으로 거침없이 주장하고 둔갑시킨다. 분별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겉모양이 비슷하고 냄새가 비슷한 면이 있어 혼동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콕 찍어서 맛까지 보고도 계속 우긴다면 문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걸 문제라고 하면 순진한 사람 취급을 당한다. 그들은 똥에서 반드시 된장 동일 내지는 유사 성분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찾아낸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똥과 된장을 구분할 길은 난망하다고 주장한다. 이렇듯이 똥과 된장의 구분이 난망한 나라는 위태롭다.

근본은 지켜라

근본을 무시하고, 원리를 부정하니 상식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양아치 집단’이 인정받기 힘들다. 비생산적이며 소모적인 논쟁이 시간과 경비를 잡아먹을 뿐이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에서 십여 년 넘게 계속 주춤거리고 있다. 일단 문제만 생겼다하면 음모론으로 프레임을 짜고 사생결단 식으로 덤벼든다. 과거 자신들이 인정했던 잘못도 망각의 힘을 믿고 슬그머니 뒤집는다. 오직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고 치닫는 것이다. 돈키호테가 따로 없다. 이것이 정계와 재계의 고질적 병폐이다.

내 갈 길을 힘써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남의 길에 처 들어가 깽판을 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니까 앞서가는 놈을 거꾸러뜨려야만 자신이 그보다 앞서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그릇된 풍조를 이념의 알량한 프레임 속에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인정해주었다. 아마 지금도 인정하는 부류들이 꽤 될 것이다.

옛사람들의 욕 가운데 가장 심한 욕이 “애라이, 근본 없는 놈!”일 것이다. 근본을 알아야 한다. 근본을 중시해야 한다. 근본을 돌아봐야 한다. 근본을 지켜야 한다. 근본부터 시작해야 한다. 똥을 된장이라 우긴다 해서 똥이 절대로 된장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는 가능하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사실 자체보다 어떻게 보느냐는 의견(생각 또는 시각·관점)을 중요시해왔다. 그러니까 사실을 제대로 규명하려 하지 않고, 가설의 프레임을 새운 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만 문제 삼은 것이다. 사상누각을 쌓은 것이다. 그 사상누각이 무너졌는데, 다시 모래 위에 성을 짓겠다는 집단들이 있다. 기초(근본)가 부실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기초를 닦지 않고, 기둥을 세우지 않고, 눈가림용 벽만 쌓아 집을 만들려고 한다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불행한 결과가 당사자들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에 밀어닥칠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건대, 새가 좌우 날개로 날 듯, 빛과 소금이 있어야 세상이 밝고 썩지 않듯, 비판과 견제, 대화와 타협이 있어야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고 가꿔나갈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이해관계나 대결구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공익·정의·행복을 공동선으로 추진하는 맞상대가 있을 때 제대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