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592억 뇌물' 등 관련 80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고광률의 다른생각]

[편집자주]고광률은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 1990년 엔솔로지(아버지의 나라』 실천문학)에 통증으로 등단 이후장편소설 오래된 뿔(은행나무등을 발표하였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서울에서 잡지사 정치 관련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대중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출강을 하고 있다.

정치와 마술은 같은 것인가

나에게는 못다 한 대망이 있어

지금 우리는 맹목적인 권력 지향, 금력 지향, 학벌 지향 사회가 낳은 병폐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또 망가뜨릴 수 있는지 똑똑히 보고 있다. 과정 없는 결과만을 중요시하기에, 권력자와 재벌가 들은 마음만 먹는다면 뭐든 할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권력이 금력과 서로서로 붙어먹는 과정에서, 아니 붙어먹을 수 있도록 학벌(물론, 학연 지연 혈연도 가세했다)이 거의 삐끼에 준하는 매개자로서 기능했다.

죄짓고 탄핵 받은 대통령이 구치소에 들어앉아 반성과 성찰은커녕, 대권 도전에 즈음해 읽었다고 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을 다룬 『대망』(야마오카 소하치)을 다시 탐독하고 있다고 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자성록』(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을 읽는다고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이 사실이 사실이라면, 그러니까 그 분은 일체의 국정농단이 억울한 누명이고 모함이기에, 다시 세상을 자기 뜻에 맞춰 일으켜 세워보겠다는 선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천인공노할 용기와 도전정신은 어디에 기반을 두고 생긴 것일까. 그 분의 무지 혹은 무모함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까지 하신 분인데, 그토록 무지하고 무모할 리가 없다. 그 분은 자신의 지지 기반(아마도 있을 것이라고)을 믿고 있는 것이다. 또 국민은 ‘의식화된 피지배자’이기에 계몽과 계도의 대상이지, 선정(善政)내지는 섬김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불순한 자들의 짠 프레임에 일부 무지몽매하고 좌편향된 국민이 놀아나고 있을 뿐이라고 판단하고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분의 이 판단은 그른 것인가?

그래도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판단이 그르다고 단정하면, 박근혜 씨야말로 무지몽매한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무지몽매한 사람이 일국의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어쨌든 그는 (설령 부정선거를 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다. 박근혜 씨의 부정·무능·패악은 박근혜 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박근혜 씨의 부정은, 그를 선택하여 권력을 위임하고 마냥 지켜보기만 했던 국민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책임이 있다는 것인가.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박근혜와 이명박 정권 하의 국정농단을 짚어보자. 국정원과 군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여론 조작, 관제 데모, 선거 개입, 블랙리스트 및 화이트리스트 작성 관리, 겁박과 공작, 세월호 관련 거짓말과 불법적인 훈령 조작 등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설마… 어떻게 그렇게까지… 라는 탄식이 줄줄이 이어진다. 어떤 부분은 저것이 사람이 할 짓인가 싶기도 하다.

이 모두가 상식 밖이요, 인면수심이요, 양아치보다 더한 수준이다.

국민 생명의 지겨움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이러고도 반성과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되레 세월호 참사 문제를 두고는 이제 지겨우니,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그만하라며 큰소리를 친다. 이게 공당(公黨)의 책임자가 당당히 뱉는 말이다. 예전에 떡값문제로 죄짓고 사면 받은 이건희 씨의 대국민 질책이 떠오른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일갈했다. 범죄자가 선한 국민에게 한 질책이다.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나라다.

참사의 원인규명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무엇이 지겨우며, 무얼 그만 하라는 것인가. 정치인이 선한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 의무일진대, 그 의무를 수행함에 어찌 지겨움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그동안 결과만을 중시하는 세상을 만들어왔다. 어찌 보면 군사독재시절·개발독재시절이 낳은, 청산되지 못한 병폐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빌붙어 이해타산만을 따랐다. 즉, 어떻게 권력을 얻었으며, 어떻게 권력을 행세하고 있는지를 따져보기보다, 권력을 가졌다는 것 자체를 최고 불변의 가치로 봤다. 이러다보니 권력을 가진 자가 세상의 진실과 정의마저 좌지우지하는 신권(神權)에 버금가는 절대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즉 이명박=선(善), 박근혜=선이 된 것이다.

악을 선으로 바꾼 절대권력

제2의 이명박과 박근혜, 제2의 한나라당 탄생을 막으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왜 배우나? 스스로의 무지를 깨우치려고…. 왜 많이 배우나? 무지로 인해 피해 입고 박해받는 억울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왜 돈을 버나? 의식주와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왜 많은 돈을 버나? 돈이 없어 굶주리거나 헐벗은 사람들을 도우려고.

왜 출세(권력)를 하나? 못 배워 억울하고 못 먹어 힘든 자들을 제도적으로 구해주려고.

명문대학을 나와 돈 벌고 출세하여, 만인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자기 한 몸과 일가(一家: 떨거지들)를 위해, 그들과만 더불어 떵떵거리며 살려고, 배우고 벌고 출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권력=돈=학벌’ 등식에 준하고 있다. 권력만 잡으면, 돈만 있으면, 학벌만 좋으면 모든 것을 이루고, 어떤 잘못이건 용서된다(실제로 그래왔지 않은가. 아니었다면 지금 재수사를 하는 일들은 없을 것이다). 이런 국가가 어찌 제대로 유지될 수 있겠는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정의’를 외쳤다. 얼굴에 철판을 깐 것이다. 박근혜 씨는 ‘정상적인 혼’을 주장했다. 그 정의와 정상적인 혼들이 만든 결과물들을 보라.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것들을 국민들에게 계몽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생각’이 채 자라지 않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정의와 정상적인 혼을 어떻게 정의내릴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청소년들의 잔혹 범죄가 예사롭게 보이는가. 그들은 정의와 정상적인 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겠는가. 앞선 세 가지 질문은 가볍지 않다. 그 답이 올바르고 튼튼해야 다시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러면, 조만간에 『대망』을 열독한 박근혜 씨가 자신의 ‘태극기 후예들’을 거느리고 재등장할 것이다. 이때는 ‘촛불학습’으로 뼈아프게 깨달은 바가 있어 더욱 신묘한 국정농단을 펼칠 것이다. 그 신묘한 국정농단은 촛불이 아닌 횃불로도 어쩌기 힘들 것인데, 아마도 독재치하의 국민된 삶을 살아야 할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