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 회원들이 경주 봉좌산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도덕산-봉좌산은 경주와 포항의 경계이면서 낙동정맥의 일부로 부근에 정혜사지 13층석탑(국보 제40호), 독락당(보물 제413호), 옥산서원, 흥덕왕릉, 양동마을 등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편집자주] ‘충곡의 역사文化산행’=등산+역사文化유적지 탐방+맛집기행

임도혁 대전언론문화연구원 이사장(전 조선일보 충청취재본부장)은 오래 전부터 등산, 사진촬영, 문화재 등에 관심을 갖고 전국을 누벼왔다. 임 이사장은 최근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의 산행대장을 맡아 역사문화산행을 기획, 지난 18일 처음으로 경주를 다녀왔다. 임 이사장이 만든 ‘역사문화산행’은 역사문화 유적지 답사와 산행, 지역 맛집까지 하나로 결합시켜 처음으로 시도한 새로운 산행이면서 신개념 여행이다. ‘알고 보면 즐겁다’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앞으로 월 1회 게재한다.

 ❏경주 도덕산(702m)-봉좌산(626m)

♠들어가며

- 일시: 2017년 11월 18일(土)

- 참석인원: 22명

- 코스: 관음사(경주시 안강읍)~ 지게재(3거리, 좌회전)~ 봉좌산(조망처)~ 배티재~ 너럭바위~ 도덕산(정상 바로 지나 왼쪽으로 하산)~ 장산서원(통과)~ 정혜사지13층석탑(관람)~ 독락당(관람)~ 옥산서원(관람 / 화장실, 넓은 주차장) [약 12km, 6시간20분](순수 산행구간 10km 5시간)

 

♠경주 도덕산-봉좌산, 석탑·왕릉 & 서원 반가: 신라 조선 엿보기

새로운 시도인 만큼 고민이 컸다. 이것저것 한데 뭉뚱그려 만든 물건은 자칫 이도 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아무에게도 호응을 얻지 못하는 애매한 성격의 물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등산부터 답사, 맛집까지 일석삼조(一石三鳥)의,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새로운 시도이니 만큼 분명히 의미가 작지 않으리라 위안을 삼는다.

당뇨병 환자를 위한 까다로운 맞춤식단, 청년이나 노인을 위한 맞춤형 주택, 맞춤 정기배송 서비스도 있다 하지 않는가? 나도 잠재 수요층을 겨냥해 맞춤형 ‘역사문화산행’을 기획해본 것이다. “결정장애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혼자서 자화자찬을 한다.

사실 세 가지를 한데 결합시키기 위해선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하므로 꽤나 까다롭다. 산행 4시간 안팎, 유적지 탐방 1~2시간, 식사 1시간씩 배정하고 당일치기인 만큼 동선(動線)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자, 역사문화산행 제1탄이다. 어디를 어떤 방법으로 갈까? 앞으로 진행될 산행의 성격을 집약해 보여줘야 하고, 앞으로 성공 가능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신중할 수밖에. 그래서 선택한 곳이 경주였다.

산행지는 도덕산-봉좌산. 낙동정맥의 일부이며 경주 안강과 포항을 조망할 수 있는 산이다. 약점이라면 경주 포항지역 외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산이 아니라는 점. 역사문화유적지를 우선 기준으로 삼아 유적지에서 가까운 산을 고르다보니 명산이 비껴나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오전 6시 집을 나선다. 버스 통과지점 중 하나인 경성큰마을아파트 정문 앞으로 가서 차에 오른다. 회장님 인사, 신입회원 소개 등에 이어 내가 나서 회원들에게 안내를 시작한다. 참가자는 22명. 기대에 못 미치는 수지만 어쩌랴. 세상 일이 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이런 점도 나이를 먹으면서 생긴 버릇 같다. 주변 상황을 금방 내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능력. ㅎㅎ

“험험” 어쩌고 저쩌고… 10분 이상 앞으로의 역사문화산행 진행 계획에 이어 산행지를 소개한다. 한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말씀드리면 지루할 것 같아 유적지 소개는 도착할 때쯤으로 미룬다. 

버스 창으로는 늦가을 정취가 한껏 스며든다. 도로 위는 달리는 자동차들 때문에 수많은 낙엽들이 현란한 춤을 추어대며 어지러이 날아오른다. 이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잎은 많지 않다. 특유의 맑은 가을 햇살이 여기저기 쏟아져 내린다. 조금만 더 있으면 스산한 겨울풍경으로 바뀔 것이다. 점차 멀어져가는 가을 풍경. 머지않아 하얀 설산(雪山)이 다가온다는 뜻도 되기에 아쉬움은 그리 크지 않다. 설산이 주는 아찔한 황홀감은 우리 산꾼 아니면 모른다. 

휴게소에 들러 아침식사를 한다. 고교 동창인 청려장이 내 첫 주관산행이라고 밥과 국, 김치를 사서 낸 것이다. 평소 제리(나)를 많이 괴롭히는 심술쟁이 톰(청려장)이지만 이렇게 생각해줄 때도 있다. “야! 쪼금 고맙다.”

감 수확 일손을 돕느라 순천에 가신 안심 부회장님도 단감 15kg을 보내오셨다. “감사합니다.” 

잠시 잠에 빠졌다가 퍼뜩 눈을 뜨니 어느새 경주 안강읍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계곡을 따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관음사가 나온다. 암자에 가까운 아주 작은 절이다. 관음사를 지나쳐 산행이 시작된다.

10여분 오르자, 지게재라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어래산이다. 우리는 왼쪽 봉좌산으로 방향을 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봉좌산 정상이 보인다. 들머리부터 여기까지 3km 지점으로 1시간10분 소요됐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막힘이 없다. 왼쪽으로 포항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출렁이는 동해의 파도 소리도 들린다고 하건만 오늘은 시야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실망스러운 수준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정상은 종을 매달아 사뭇 독특한 광경을 선사한다. 여러 일행 기념사진을 찍어드린 뒤 발길을 돌린다.

도덕산까지는 그다지 기복이 없는 쉬운 길이다. 다만 낙엽이 두껍게 쌓여 발 밑을 조심해야 한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지만 미리 봐둔 장소는 아직 멀다. 12시 반을 넘겨서야 등로와 임도가 만나는 대피소에 도착한다.

비로소 허기를 메운다. 여럿이 모여 각자 싸온 반찬을 죽 늘어놓고 먹는 산중 오찬은 어떤 산해진미,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 떠들썩한 잡담 속에서 나누는 약간의 막걸리나 담금주는 입맛을 더욱 돋아준다. 화산 회장님이 가져오신 영지버섯 술은 쌉쌀하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맛과 향을 지녔다. “캬~ 좋다”를 연발하며 조금씩 목으로 넘긴다. 

도덕산까지 다시 1시간쯤 걸린다. 틈틈이 산행 안내 표식지를 깐다. 가끔 통과시각도 적는다. 후미가 잘 오는지 무전을 통해 거리를 가늠하며 표식지를 깔고 사진도 찍으며 진햐한다. 자연 손발은 물론 머리까지 꽤 바쁘다. 

도덕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한동안 급경사이다. 낙엽이 많아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이다. 여러 차례 조심하라고 무전을 날린다. 이런! 한순간에 헷갈려서 엉뚱한 길로 접어든다. 트랭글 지도를 보니 되돌아가지 않아도 방향만 잘 잡아 내려가면 정상적인 등산로와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진행한다.

‘충곡표 꽃길’이라고 소개했는데 가시밭길이라는 농담이 들려온다. 죄송할 따름이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웃음을 보이며 얼버무린다. 오후 3시. 총 10km에 5시간 걸린 셈이다. 예상보다 1시간쯤 지연됐다. 유적지 탐방을 서두를밖에.

*경주 도덕산-봉좌산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