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대구 도심 12곳에서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전단지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대구경찰청 제공)

[편집자주]고광률은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 1990년 엔솔로지(아버지의 나라』 실천문학)에 통증으로 등단 이후장편소설 오래된 뿔(은행나무등을 발표하였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서울에서 잡지사 정치 관련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대중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출강을 하고 있다.

[고광률의 다른생각]

타공-멸공-반공=권력?

반공 프레임은 보수우파 정치세력들의 금과옥조와 다름없다. 이 유구한 역사를 지닌 신묘한 반공 프레임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통치를 해 온 정치세력들은 해방이후 지금까지 대다수였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정도다. 한국전쟁 기간에 최초로 반공 프레임을 만든 이승만, 이를 계승․유지한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박근혜 정권도 십분 이용했으며, 김영삼 정권도 멀리하지 않았다. 혹자는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북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으니 반공을 이용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이런 주장을 물 타기라고 한다. 불로 난방을 하는 것과 불로 방화를 저지른 것은 다르다.

 대구에서 정부를 비난하는 소형 전단지 2만 장을 발견하고,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보도가 떴다.

'대한민국 정보 최고책임자 4명 구속!!/전직 청와대 안보실장 2명 구속!!/종북좌파에 의해 대한민국은 무장해제되고 있다!!'

전단지 내용 중 일부다. 그러니까 종북좌파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온 전직 국정원장들과 안보실장들을 잡아가뒀다는 것이다. 종북좌파가 잡아가뒀으니, 대한민국이 이적행위를 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적화의 위기에 빠졌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다. 홍준표가 말한 '망나니 칼춤'과는 사뭇 격이 다른 주장이다. 망나니 칼춤은 정권의 사주를 받은 검찰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부하뇌동 한다는 뜻인데, 전단지의 주장은 아예 현 정권이 종북좌파라는 것이다. 즉 북한과 김정은을 따르는 정권이라는 것이다. 

전가의 보도=반공

보수우파, 수구우파들이 스스로 잘못을 저질러 생긴 위기 때마다 들고 나오는 단골 프레임이 67년 전 이승만이 만들어놓은 반공 프레임이다. 미국의 힘으로 일제로부터 해방은 됐는데, 독립을 하지 못한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렸다. 3년이 지난 뒤, 해방된 한반도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북쪽은 소련의 영향 아래, 남한은 미국의 영향 아래 놓였다. 이념을 달리하는 각각의 정권이 들어서고 2년 뒤에 한국전쟁이 터졌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국민에게 걱정 말라는 거짓말만 반복하던 남쪽은, 개전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북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승만은 서울 시민과 함께 수도를 지킬 것이니 걱정 말라 했고, 남쪽이 되레 북으로 치올라가는 양 호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일찌감치 대전으로 도망쳤고, 한강다리도 폭파했다. 임진란에 선조가 백성을 남겨둔 채 한양을 버리고 평양으로 도망친 것과 다를 바 없다.

왕조시대에는 종묘사직이 곧 국가이니, 백성 버리고 도망치는 왕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쳐도, 대통령을 넘어 스스로 국부(國父)라 자칭한 이승만이 서울 시민을 버리고 도망친 것은 어찌 봐야 할 것인가. 작전을 지휘하기 위해서 후퇴한 것으로 봐야 하나. 이후 이승만은 전주로, 다시 대구로, 부산으로 도망쳤다. 미국으로 도망치지 않은 것이 다행인가. 그러고는 유엔군과 국군에 의해 서울이 수복된 뒤에 그가 돌아와서 한 짓은 북한 점령에서의 부역자 색출이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도망친 자신의 과오와 책임을 엄한 서울 시민들과 국민들에게 물은 것이다. 다시 말해 속수무책으로 서울 시민과 국민을 적의 치하에 빠뜨린 대통령이, 그 적의 치하에서 어떻게 해서든 목숨을 부지하느라 발버둥 치며 헤맨 국민에게 그 죄를 물은 것이다.

오직 이념의 잣대 하나로. 이것이 반공을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한 이승만의'수작'이었다. 그는 이 수작으로 절대권력 대통령 직을 이어갔다. 서울을 점령한 것은 북한군이었으나, 서울을 포기하고 고립시킨 것은 이승만이었다. 국민을 지켜줘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한 대통령이, 국민을 두 패로 갈라놓고 그 책임을 되레 겨우 살아남은 국민에게 물은 것이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 아닌가.

 반공신이 권력의 수단인가

정치는 수권(授權)이 목표다. 수권을 위해 싸워야 하는데, 적이 있어야 하고 그 적을 제압할 ‘무기’가 있어야 한다. 이승만 이후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을 방어하고 상대를 칠 그 무기로 반공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보수수구세력들에게 이 반공이 이후 67년 동안 전가의 보도가 된 것이다.

조선조 송시열은 서민 위한 대동법은 끝내 반대하면서도 틈틈이 북벌을 내세우며 효종을 얼렀다. 그가 정작 청(淸)에 대한 복수를 위해 그랬는지는 묘연하나,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북벌을 이용했다는 의구심은 역사에 남아 있다. 

1994년, 2003년 북핵 위기 때를 돌아보라. 미국과 일본과 중국 등은 신중한 접근(최근 미국이 진짜 전쟁 계획을 했었지만, 희생이 커 포기했다는 주장이 있다)을 하는데, 정작 한국의 보수우파 세력들은 좌시할 수 없다면서 가만히 둘 수 없다고 비분강개하며 위기 조성에 앞장섰다. 그 도가 지나쳐 마치 전쟁 불사론을 부르짖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전쟁으로 득을 볼 가능성이 있는 미국과 일본은 신중한 자세를 보이며 이리저리 재고 있는데, 정작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인이 전쟁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물론 그들도 궁극적으로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위기 분위기를 조성하여 정치적 반전이나 우위 또는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결국 ‘반공신(反共神)’을 부른 것이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방위비는 이래저래 흐지부지 사용하고, 전략무기는 불량으로 드러나고, 그나마 무기도입 과정도 암흑천지다. 이것이야 말고 이적행위의 근거가 아닌가. 이를 통해 득을 본 것은 남측 관계자들이고, 북측은 전혀 무관한 것인가. 이런 셈법이니 물 새는 바가지가 아닐 수 없다.

분명 대한민국은 주권국가인데, 전시 전작권 환수도 하염없이 미루거나 반대하고, 보온병을 포탄으로 보고, 이런저런 핑계로 군에 갔다 온 적도 없고, 정작 북한의 정체(사회주의국가인지, 아니면 세습왕조국가인지)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자들이 툭하면 이승만이 창조한, 노쇠하고 기신기신하는 반공신을 불러들여 굿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참반공이 필요하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생각해보라. 반공은 너무나도 무섭고 엄중하기에 절대 정치적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 한국전쟁으로 300만 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생이별한 이산가족도 천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런 엄청난 국가 재난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되고, 반전의 도구로 삼으려 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헛발질, 헛손질 해가며 반공신이라는 허깨비를 쫒지 말고, 상식과 정의의 실체를 쫒아라.

왕이 못 지킨 나라를 지키느라 충성스러운 백성이 악전고투할 때, 왕은 그 악전고투하는 백성의 고충을 헤아려주기는커녕 반란을 획책한다는 근거 없는 이유를 들어 잡아 죽였다. 그 왕이 선조이고, 느닷없이 잡혀 죽임을 당한 의병장들이 고경명 곽재우이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일본 놈들의 국토 유린보다, 실체가 없는 반란을 들어, 왕이 못 지킨 백성을 스스로 지키려 일어났던 백성을 불문곡직 잡아 죽인 왕이 온전한 자인가. 권력이라면, 백성의 목숨과도 언제든지 기꺼이 맞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면 등골이 서늘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하나다. 그 밑바닥에 정의가 있다. 정의는 정의일 뿐 자유한국당 식 정의나 더불어민주당 식의 정의는 없다. 그저 정의는 절차탁마하여 찾아내는 학문이나 그 무엇이 아니라, 양심이고 상식이다. 사람은 두 가지를 알고 행해야 비로소 사람인데, 그 하나는 긍휼함을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약 2560년 전 공자가 한 말씀이다.

우리가 정치적 잇속을 따져 반공․전쟁을 입질하는 동안, 우리의 멋지고 아름다운 우방 미국은 전쟁무기를 파는 데 혈안이다. 그 무기는 무슨 돈으로 사나. 무조건 전쟁위기에 동조하는 세력들이나 보수우파가 내놓을 우국 출연금인가. 아마도 세금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세금에는 생계로 허덕이는 서민들의 세금이 대거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서민들은 열심히 뼈 빠지게 벌어 1997년 재벌 살리는 공적자금을 충당했는데, 이제 20년 뼈 빠지게 벌었더니 미국의 전략무기 수입으로 써야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