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관세포탈 혐의와 관련한 세관 당국의 압수수색이 실시된 서울 강서구 방화동 대한한공 본사에서 관세청 직원들이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편집자주]고광률은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 1990년 엔솔로지(아버지의 나라』 실천문학)에 통증으로 등단 이후장편소설 오래된 뿔(은행나무등을 발표하였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서울에서 잡지사 정치 관련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대중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출강을 하고 있다.

재벌과 보수언론의 후안무치

대한민국에는 정권이 바뀌어도, ‘촛불시민혁명’이 일어나도 절대 바뀌지 않는 두 집단이 있습니다. 재벌과 보수언론입니다. 이들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재벌은 경제정의에 관심 없고, 보수언론은 언론정의 구현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관심 있는 것은 오직 자사의 이익입니다. 이들이 버티는 논리는 간단합니다. 재벌이 돈을 벌어야 시민의 일자리가 생기고 나라경제가 돌아간다는 것이고, 보수언론이 진보와 좌익을 막아줘야만 나라가 안정된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경제시대에 재벌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봐야 한국에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명명백백하게 입증된 사실입니다. 보수언론이 사실과 정의를 좇기보다는 미국과 일본의 이익을 우선하고, 자국의 이익을 그들 나라의 이익과 동일시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또한 보수언론이 재벌과 한통속이 되어, 또는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 같은 보수정권과 한통속이 되어 사실을 호도하고, 왜곡된 주장(의견)을 펼쳐 민심을 이간질하고 국가발전에 발목을 잡는 예는 허다합니다. 

국가와 국민의 피땀으로 만든 삼성

한국 제일의 재벌 삼성 얘기만 하지요. 오늘날 재벌은 재벌의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국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값싼 부지(필요보다 훨씬 많이 공급하여 부동산 장사까지 할 수 있도록)를 대량으로 공급해주었고, 값싼 원자재를 공급해주었고, 낮은 임금정책을 통해 값싼 노동력을 공급해주었고, 세금을 왕창 감면해주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판매 단계에서는 외제는 아무리 싸고 질이 좋아도 국산품애용이라는 명목으로 수입 및 소비를 국가가 나서서 막아줬고(막아준 정도가 아니라 감방으로 보냈음), 심지어는 경영권까지도 국가가 국민세금을 처들여 대신 방어해주었으며(IMF 경제위기 당시 SK 그룹의 경우), 웬만한 불법·탈법은 사법기관 종사자들이 적당히 뒷돈 먹고는 알아서 막아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재벌이 탄생했고, 성장했으며, 오늘날에 이른 것입니다. 어두운 면만 봤다고요? 어두운 면의 1000분의 1도 안 되는 면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지요. 그러나 국가가 나서서 재벌을 이렇게 키울 때, 이런 달콤한 약속을 했습니다. 기업이 성장을 해야 국민이 잘 살 수 있다(이걸 고상하게 말하면 성장과 분배 원칙입니다). 국민이 호구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지요.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 국민은 결국 호구가 됐습니다. 그 약속은 한 번도 실현된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개발독재시대를 이끌며 이런 말을 밥 먹듯이 했던 정권 수장은 궁정동에서 술 마시며 엔까 감상하다가 오래된 최측근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으니까요. 이후 정권들은 박정희 정권이 약속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지요. 또 이걸 해결하려는 시늉이라도 할라치면, 보수정치인들과 보수언론이 나서서 빨갱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분단국가이니, 이 말보다 더 임팩트 있는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는 곧 잡아 죽여도 될 놈이 아니었던가요.

자본주의국가는 부(富)가 작동 동력이고, 사회주의국가는 인민을 위한 집단지도체제 수립 및 유지가 작동 동력이자 원리일 것입니다. 우리는 북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일인독재체제 형식의 정권세습을 비아냥거리고 지탄합니다. 남의 제일 재벌 삼성은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부의 세습을 이루었으나, 이를 지탄하기는커녕 옹호하기까지 합니다. 국가의 작동원리가 잘못되었는데, 그 국가가 제대로 작동될 리 있겠습니까. 

범법자 이건희의 대국민 충고

떡값 비리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건희를 단 4개월 만에 이명박 대통령이 사면해주었습니다. 이 자가 사면 받고, 캐나다에 갔을 때 언론에 대고 한 대국민 발언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이냐. 세계가 경쟁하는 글로벌 세상이다. 한국 사람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지금처럼 하다가는 나라경제가 큰 어려움에 처한다. 뭐 대략 이런 취지의 발언이었습니다. 범죄자가 대다수 선량한 국민을 향해 정신 차리라며 던진 충고입니다. 가증스럽지 않나요. 이런 자가 병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매매 의혹 동영상 사건까지 터진 겁니다. 재임 시 자신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대통령이라고 부르짖었던 이명박 씨와 닮은꼴이 아닌가요.

그런데 한진의 조양호 총수일가의 도덕성과 불법성은 드러나는 족족 까발려 아작을 내면서, 이건희와 이재용의 도덕성은 누구도 나서서 건드리지 못합니다. 증거불충분인가요.

그래서 그 아들 이재용도 박근혜 정권과 최순실에게 말도 사주고 돈도 주는 불법 행위를 나라 안팎에서 자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단성 있는 아버지는 국민을 향해 일갈을 했는데, 나름 소심한 그 아들은 청문회장에서 다소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어눌한 말로 잘못되었으면 고치겠다고 얼버무렸습니다. 초딩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죄송하지만 잘 못 알아듣겠다”고 하면서…. 물론 법정에서는 결백을 부르짖었지요. 청문회장에서는 멍청했는데, 법정에서는 똘똘했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그래서 일단 풀려났습니다. 

목숨을 생산재처럼

폐일언하고, 삼성이 정작 용서가 안 되는 것은, 반도체는 노동자들의 목숨을 소모품 또는 생산재인 양 여기고, 계획적·조직적으로, 그것도 장기간 동안 악랄하고 집요하게 벌여온 노조 파괴 공작들입니다. 말 그대로 입술에는 꿀을 바르고 자신도 못 알아들을 멍청한 말을 지껄여대면서, 틈만 나면 등 뒤에 감춘 칼로 위해를 가하는 격이지요. 이게 국민 대다수가 떠받드는 삼성의 숨겨진 진면목입니다. 

연일, 한진의 이명희는 ‘인간 이하’, ‘정신병자 또라이’ 급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특정인들을 모욕하고 폭행했다는 이유로 물 컵 조현민, 땅콩 조현아 또한 상종 못할 패륜녀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정인들이 아니라, 대량으로 감시, 미행, 협박 등을 하며 인권 침해를 한 이재용 집단의 만행에 대한 규명 및 단죄는 진도가 더딥니다. 더뎌도 너무 더딥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러다가 덮어둘 속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1938년 삼성상회를 창업하여 1941년 주식회사로 개편한 삼성이 지난 77년 동안 국가의 비호(심지어 노무현 정권 때 경제정책도 삼성경제연구원에 의존했음)와 노동력 착취로 벌어들인 돈으로 무엇을 했왔나요. 그 돈은 누구로부터 벌어들인 돈인가요.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그 돈을 벌게 해준 소비자(국민)들에게는 어떤 감사의 뜻을 표했나요. 감사의 뜻은커녕 이 씨 일가를 위한 착복, 세금 포탈, 비자금 등으로 모아지고, 그 가운데 일부가 정치인과 법조인들의 떡값으로, 노조를 감시하고 탄압하는 비용으로 쓰이지 않았을까요.

대체 삼성이 한국에서 어떤 고용을 얼마큼이나 창출하나요. 주변에 삼성 정규직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둘러보세요. 정말 아직도 ‘삼성 = 대한민국’이라고 생각들 하시나요.

삼성이 무엇이건대, 감히 국가정보기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채증, 사찰, 감시 등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게 한진 일가의 횡포보다 작다고요. 윗물을 정화해야 아랫물이 맑아지는 법입니다. 재계 갑질과 횡포에 삼성보다 더 큰 재벌이 있나요. 한진은 삼성을 따라한 것일 터인데, 자신들만 아작이 나고 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정의 구현도 공평·공정해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