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교단직설(敎壇直說)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바르고 곧게 말함을 뜻합니다그릇된 것을 그르다 일컫고 옳은 것을 옳다 말하지 못한다면그에게서 배우는 아이들의 미래는 한없이 어두울 것입니다교육과 관련된 정책 등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기 위한 글이 연재될 것입니다필자인 신정섭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나불의를 참지 못해 공부보다는 운동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이후 운동에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97년 호수돈여고 영어교사가 된 뒤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달라져야 밝은 미래가 있다는 사명감으로 98년에 전교조에 가입해 활동해오고 있으며 현재 전교조대전지부 대변인을 맡고 있습니다.

[신정섭의 교단직설]

2월 3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위 25%인 한국 가정의 학생 중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3등급(Level3) 이상 상위권에 든 ‘학업 탄력적(academically resilient)’ 학생 비율이 2006년 52.7%(2위)에서 2015년에 36.7%(9위)로 급락했다. 한 마디로, ‘흙수저’ 출신 아이가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 7월에는, 2016년을 기준으로 서울권 7개 주요 의과대학 신입생 중, 고소득층(소득인정액 기준 8~10분위) 자녀가 전체 1,005명 중 604명으로 60%를 차지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는 한국장학재단이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에게 제출한 ‘2016학년도 의대 국가장학금 소득 분위별 현황’ 자료에 따른 것이다. 당시 10분위 소득인정액은 ‘월 1,170만원 초과’였는데, 이런 금수저 출신이 전체 1,005명 중 469명으로 무려 46.7%를 차지하였다. 

조금 오래된 통계지만 더 충격적인 데이터가 있다. 2010년 9월 성균관대 경제학과 김민성 교수의 ‘고등학교 내신성적에 대한 사교육비 지출의 효과’ 논문에 따르면(아래 표 참조), 한 달에 사교육비로 평균 100만원을 지출하는 고등학생이 내신성적 3등급 이내에 속할 확률은 75.1%로,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는 경우 25.4%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절”은 갔다. 영화 에 나오는 연희(김태리 분)는 연세대학교에 다닌다. 서울의 달동네에 사는 것으로 보아 ‘기초’ 또는 ‘1분위’ 가정의 자녀였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우스갯소리로 ‘전두환 장학생’들이 꽤 많았다. 파쇼 정권이 과외나 학원 등 사교육을 금지한 덕택에, 죽어라 교과서만 파서 서울의 좋은 대학에 간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렇게 튼튼했던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안타깝게도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피부로 느낀다. ‘기초’ 또는 소득 ‘1~2분위’ 가정의 자녀가 학교교육 시스템을 통해 가난 탈출에 성공하는 사례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 교과서만 열심히 파고들면 누구나 일류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학력고사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부모의 학력과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화려한 스펙이 필요한 수시모집 ‘학생부 종합전형’과 정시모집 당락을 결정짓는 ‘수능 성적’ 둘 다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끊어져 버린 사다리를 어떻게 하면 이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조건에서 학원, 과외 등 사교육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고, 결국 해법을 공교육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수능시험을 자격고사로 전환하고 대학을 평준화하는 방안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대학입시를 획기적으로 개편하면 좋은데, 과연 그런 방안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교육혁신 청사진을 마련할 국가교육회의에 ‘공정하고 단순한 대입제도’를 주문했다고 한다. 말이 쉽지, 참 어려운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국가교육회의에 바란다. 어설프게 개혁의 흉내만 내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뒷걸음질을 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특목고(외고, 자사고) 폐지, 수능 절대평가, 고교학점제, 국립대 평준화 등 재료가 준비되었다면 좌고우면 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앞으로 가라. 모두를 만족시키는 만사형통 개혁안은 이 세상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