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왕릉 입구의 소나무숲. 꿈틀꿈틀 뻗은 소나무가 흥덕왕 재위 기간인 통일신라 하대의 혼란상을 연상케 한다.

[편집자주] ‘충곡의 역사文化산행’=등산+역사文化유적지 탐방+맛집기행

임도혁 대전언론문화연구원 이사장(전 조선일보 충청취재본부장)은 오래 전부터 등산, 사진촬영, 문화재 등에 관심을 갖고 전국을 누벼왔다. 임 이사장은 최근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의 산행대장을 맡아 역사문화산행을 기획, 지난 18일 처음으로 경주를 다녀왔다. 임 이사장이 만든 ‘역사문화산행’은 역사문화 유적지 답사와 산행, 지역 맛집까지 하나로 결합시켜 처음으로 시도한 새로운 산행이면서 신개념 여행이다. ‘알고 보면 즐겁다’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앞으로 월 1회 게재한다.

4. 흥덕왕릉(興德王陵)
사적 제30호.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산42.

옥산서원에서 자동차로 15분쯤 떨어져 있다.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재위 826~836)은 장보고로 하여금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서해를 방어하게 한 왕이다. 또한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茶) 종자를 지리산에 심도록 해 우리 차 문화의 시원을 이룬다.

흥덕왕릉은 원성왕릉(괘릉)과 함께 신라 왕릉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왕릉이다. 타지마할, 공민왕릉처럼 사랑하는 장화부인(章和夫人)과 일찍 사별한 왕이 부인을 위해 무덤을 잘 가꿨다고 한다.

흥덕왕릉의 첫 번째 매력은 입구의 소나무 숲이다. 수백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듯하다. 두 번째는 원성왕릉과 비슷한 모양의 무인석 한 쌍. 흥미롭게도 누가 봐도 한국인이 아니다. 당시 서역과의 교류를 증명하듯 아랍인 얼굴을 하고 있다. 세 번째는 상석, 돌사자, 둘레석과 난간석 등 여러 석물(石物)이다. 상석은 보기 드문 정도의 웅장한 크기에 불교의 영향인지 안상(眼象)을 새겼다. 돌사자는 참으로 볼륨감이 품부하다. 1000년 이상 비바람을 맞았건만 섬세한 조각이 여전하다. 각기 네 방향을 지키면서 고개를 좌로 봐, 우로 봐 하면서 다른 모습을 한 디테일 역시 우수하다. 무덤의 탱석에 새긴 12지신상은 살아 움직일 것 같다. 이 모습 그대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스토리를 꾸민다면 훌륭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덕왕릉 주변 네마리 사자상 중 하나. 서역인 얼굴을 한 무인석을 비롯해 문인석, 병풍석, 난간석 등 석물이 빠짐없이 잘 갖춰져 신라 왕릉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귀부(龜趺)의 수수께끼. 이수(螭首)와 비석(비신)은 없다. 귀부의 거대한 크기에 비춰 이수와 비신도 엄청 컸을 것이며 다른 석물들이 그대로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수와 비신은 애초부터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받침이자 기단 역할을 하는 귀부용 돌덩이부터 옮겨놓고 조각을 하던 중 그만 귀부의 머리가 깨지는 바람에 공사를 멈췄을 것이다. 비신을 꼽는 부위가 파지지 않은 점이 이를 증명한다. 흥덕왕 재위 시기가 통일신라 하대로 왕권이 불안하고 사회가 혼란기에 접어든 때였지 않은가! 당시 왕위를 둘러싸고 걸핏하면 골육상쟁이 벌어지곤 했지만 흥덕왕은 후사가 없어 사후 또 다시 피바람이 불었다. 그러니 맨 나중에 세우는 비가 제대로 건립되지 않았다는 점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5. 외바우 경주안강점
경주시 안강읍 구부랑3길 12번지. 054-763-7733

버섯한우전골 1인분에 12,000원. 그래서 회비를 평소보다 약간 오른 28,000원으로 책정했다. 3,000원을 올렸지만 푸짐하고 맛있다. 주인과 종업원이 친절하다. 모두가 만족했다.

나오며

내가 기획한 첫 역사문화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하산 시 30분 정도 길을 벗어난 점과 전체적으로 당초 예상보다 1시간 더 소요됐다는 점이 있었지만. 여러 차례 이런 식으로 진행한다면 꽤 괜찮은 신개념 역사문화산행 내지 신개념 여행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산행 주관하면서 사진 찍고, 유적지 설명하고, 식당까지 안내하려니 피로도도 꽤나 크다.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작은 상품(USB 32G 메모리) 하나 내걸고 유적지 관련 퀴즈를 내니 많은 분들이 재미있어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