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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 있는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만난 권성 언론중재위원장.

최근 들어 너무 많은 매체들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기존의 종이 신문, 인터넷 신문, 지상파 및 케이블 TV와 더불어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4사의 개국에 이르기까지. 뿐만 아니라 SNS로 무수한 논쟁들이 형성되고 있고 이를 각 매체들이 다시 기사화하는 등 지금의 매체 환경은 들끓는 용광로와 같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 매체들은 저마다 '단독', '특종' 등의 이름을 앞세워 더욱 치열하게 경쟁 하고 있으며 그럴수록 수용자들의 역반응도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과열된 매체 환경, 이쯤에서 한 템포 쉬어가며 곰곰이 지금의 현실을 곱씹어볼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언론인들은 가기 꺼려한다는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언중위). 보통의 기자들은 피신청인의 자격으로 심리를 받기 위해 드나드는 곳이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언중위에 조정·중재를 신청할 수 있다. 심한 경쟁 양상의 매체 환경 속에서 언중위는 어떤 기준으로 본분을 수행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에 법률가로서 헌법재판관을 지내고 현재 언중위 위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권성 위원장(71세)을 <오마이스타>가 만났다.

 

- 언론인들에게는 익숙한 조직이지만 아직 언중위라는 조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도 많은데요. 이곳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

 

"시청자나 독자들과 언론사 사이에서 뉴스보도가 사실이나 아니냐에 따라 분쟁이 생깁니다. 사실 이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소송을 제기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죠.

 

그래서 시청자들이 피해를 입어도 법원에 제소를 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경우 언중위에 오면 비용도 안 들고 짧은 시간 안에 결말을 낼 수가 있어요. 소송에서는 변호사 비용, 증거조사 비용 등이 필요한데 여기서는 그것을 전혀 안 들이고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법원에 비해 문턱이 낮은 조직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럼에도 준사법기관으로서 딱딱하고 드나들기 꺼려지는 그런 이미지가 있어요.

 

"물론 언중위가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주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이미지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중하고 공정하게 일을 하려고 애쓰는 게 더 맞는 것 같아요.

 

접수 단계에서부터 굉장히 사려 깊게 의논을 하고 중재 사건을 심리할 때도 중재위원들이 공정하게 한 쪽에 편중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딱딱할 수도 있지만 일반인에게 '신뢰감'을 먼저 주는 게 우선이라고 봅니다."

 

- 언중위에 접수된 사건들 중에서 가장 뜨거웠던 연예 관련 이슈는 무엇이었나요?

 

"2009년에 <미수다> 사건이 있었어요. 그 사건이 언중위에 들어온 사건 중에서 가장 뜨거웠던 연예 뉴스인 것 같아요. 청구 건수가 260건이 넘었죠. '루저 발언' 때문이었고 이를 여과 없이 언론사에서 보도를 했었죠."

 

2009년 11월 9일 방송된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에 출연한 이씨는 "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이 발언 관련해 당시 266건의 중재 및 조정 신청이 언중위에 들어왔다.

 

프로그램 출연자가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을 여과 없이 보도해 피해를 입었다는 게 주요 요지였다. 이씨의 발언이 구체적 사실이 아닌 '의견표명'이라 해석 한 언중위는 상당수의 신청을 기각했다. 

 

- 지난해 언론조정중재제도 만족도 조사에서 피신청인(언론인)들의 만족도가 2010년에 비해서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신청인들의 만족도도 하락을 했는데요. 신청인과 피신청인 모두가 서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방법이 있을까요.  

 

"우리가 하는 조정이나 중재는 양쪽에서 조금씩 양보를 해서 화해가 됩니다. 신청인이 주장하는 것을 100% 다 받아준다거나 피신청인의 주장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양쪽에서 다 양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지점에서 신청인도 불만스러운 부분도 있고 피신청인인 언론사도 자존심이 상하고 그런 부분이 있겠죠. 마음속으로 불만이 있을 것입니다.

 

언중위가 작년부터 피해구제 정정보도문의 크기를 많이 키웠어요. 정정보도문을 싣는 지면도 문제가 된 기사가 실린 그 지면을 이용하도록 하고, 활자도 키우고, 제목도 정확하게 쓰라고 했습니다. 또한 언중위 중재로 인해서 정정보도를 하게 됐다는 말도 함께 담으라고 강조를 했죠. 이전보다 요구하는 사항이 많아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을 것 같군요.

 

또 하나는 손해배상을 좀더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점차 정정이나 반론보도로는 만족을 못하고 '엄청난 정신적인 피해를 받았으니 위자료를 받아야겠다' '영업상 손실이 굉장히 크니 실질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손해배상을 해달라'는 등의 요구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손해배상 액수가 올라가고 피신청인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죠."

 

- 손해배상의 경우 언론사로부터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추가해서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중재위원들 가운데 전직 언론인들도 많이 계세요. 심리를 해보면,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지 아닌지 가릴 수 있지요.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해당 신청을 기각하고  피신청인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합니다. 엉터리로 청구한 내용의 경우에도 바로  반박하고 기각합니다."

 

- 최근 채널A가 '강호동 야쿠자설' 관련한 기사로 언중위에 제소가 되고 정정보도문도 올렸는데요. 어떻게 하면 이런 분쟁에 휘말릴 일이 적어질까요.

 

"중재위윈들과 대화를 해보면 제일 중요한 게 '사실 확인'이라고 합니다. 언론사의 경영 문제로 속도 전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데, 그럴 수록 한 걸음 물러서서 사실 확인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일반론으로 말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미 상처를 받은 사람을 한 번 더 헤집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본인이 반성을 하고 참회를 하는 경우라면, 상처를 너무 건드리지 않는 정도로 인정을 베푸는 것도 기자로서 좋은 것 같아요."

 

- 위원장님이 연예부 기자라면, 누구를 취재하고 싶으세요? 아니면 좋아하는 배우가 있는지.

 

"탤런트 한혜숙씨, 그 양반이 좋네요(웃음). 예쁘고 단정한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

 

- 최근에 언중위 주최로 'SNS와 인격권 침해'에 관한 정책심포지엄 포럼도 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SNS가 언론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기존의 언론 매체들이 SNS를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요. SNS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분별없이 가져다가 보도를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 않나 싶어요.

 

SNS에 올라온 글들은 검증을 받은 게 아니라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는데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언론의 자존심은 물론 책임의 문제도 함께 생각해야할 것 같습니다."

 

- 지상파, 케이블에 이어 종편까지. 미디어 환경도 더 복잡해졌어요. 이에 대해 언중위에서는 어떤 기준이나 방향성을 가지고 있나요.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뉴스 보도도 굉장히 빠르고 서둘러서 잘못 보도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은 됩니다. 그러다보면 우리들의 일거리가 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 매체들이 상당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만큼 좀더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행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