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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관심이 많고, 나름 일가견이 있었던 필자의 패션 사전에 ‘패딩’이 오르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패딩은 특별히 추운 취재현장에 나설 때만 꺼내 입는 옷,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너무도 편한, 머리 손질 부담도 없는, 아예 모자 하나만 있으면 되는 그런 옷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멋과 스타일에 무뎌진 필자는 코트가 아닌 패딩부터 찾기 시작했고, 그때 처음으로 ‘아 이젠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슬픔에 젖기도 했다.


그랬던 패딩은 수년 전부터 ‘고딩들의 교복 패션’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더니 이후엔 고가의 브랜드가 언론에 노출되면서 패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필자 역시 사회적 기류에 따라 나름 기준을 세워 패딩의 멋과 스타일을 찾아 나섰다. 우선 남들이 입지 않는 스타일의 패딩이어야 했고, 앞가슴이나 어깻죽지에 값비싼 브랜드의 상표가 떡하니 붙어 있어야 했다. 이 두 가지 기준을 세워 패딩을 고르기 시작했다.


핏감이 좋고, 탁월한 보온효과로 고퀄리티를 자랑하는 프랑스 ‘몽클레르’ 패딩은 이때부터 나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또 많은 한국 브랜드들이 디자인 카피를 한 ‘캐나다구스’와 영화배우 이병헌이 주로 입고 다닌다는 ‘무스너클’을 구입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작업에 들어갔고, 곧 필자의 취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요즘 ‘노비스’라는 브랜드 때문에 매우 혼란스럽다. 그렇다. 바로 그 정유라 패딩이다. (‘노비스’ 측에선 이런 저런 이유로 정유라가 입은 패딩은 자사 제품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패딩’을 알아보는 이들에게 정유라 패딩은 나름의 뉴스거리가 될 수 있지만, 수많은 언론사가 ‘정유라 패딩’을 한 꼭지로 따서 보도하는 형태는 아직도 저급한 저널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옐로저널리즘에 맛이 들린 언론들이 앞 다퉈 블레임룩(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켜 논란이 되는 사람들의 패션)을 먹잇감처럼 다룬 것이다.


갑질녀의 대표주자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014년 검찰에 출두할 때 입고 나왔던 ‘로로 피아나’ 브랜드의 코트는 수천만원을 호가한다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이 와중에 일부 언론에선 ‘로로 피아나’ 코트가 사과용 복장(?)으로 충분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로로 피아나’는 안데스지방에 서식하는 낙타과 동물인 ‘비쿠나’라는 동물의 털로 만드는데 살육이라는 방법이 아니라 나무 덩굴에 묻어있는 털로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사실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조현아의 무모한 갑질이 덮이진 않는다. 또 사건의 본질에 부합된다고도 할 수 없다. 대신 브랜드와 가격이 우선시된 보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가당치 않지만 적어도 복장의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생산 과정에 따라 정유라의 패딩은 비윤리적이고, 조현아의 코트는 윤리적인 패션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물론 허무맹랑한, 또 억지스러운 논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조현아의 윤리적인 ‘로로 피아나’ 기사가 가격과 브랜드에만 집중된 정유라의 ‘노비스’ 기사보단 조금은 더 기사답다고 느껴진다.


유명하고 잘난 금수저들이 입고 다니면 ‘나도 금수저처럼 보인다’는 일부 대중심리를 이용한 기사는 이제 식상하다. 대한민국만의 사회적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도 비겁한 변명이다. 정치인들도 협치를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을 운운하는데 기자들도 ‘협언’을 통해 본질에 맞는 보다 발전적인 기사를 생산할 필요가 있다.


서민들에겐 듣도 보도 못한 고가의 브랜드가 한국 시장을 공략하는 이유와 전략이 바로 이런 이유임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도 이젠 유명 브랜드의 패딩보다는 조금 더 의식적인 ‘로로 피아나’ 코트에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