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의 200억원 배임 의혹과 편집국장 경질에 대한 기자들의 반발로 시작된 한국일보 노사 대립 사태가 사측의 편집국 폐쇄 등 초유의 사태로 치닫고 있다. 15일 오후 용역을 동원한 편집국 폐쇄, 기자들의 기사 집배신(기사를 작성 송고하는 전산시스템) 접속 차단, 지면 축소 제작 등이 이어지고 있다.

 사측은 기자들이 한 달 넘게 인사발령을 거부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7일부터 '사원 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 등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적 대응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장재구 회장의 퇴진과 구속수사도 촉구했다.

 16일 오후 3시30분 서울 남대문로 한진빌딩 1층에서는 한국일보 기자 130여 명이 항의집회를 벌였다. 오전 10시, 오후 3시20분 두 차례 15층 편집국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들은 “통신 베껴 쓰기와 후배 기사를 훔쳐서 낸 17일자 한국일보는 비정상 발행”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시각 편집국 안에서는 데스크(부장급) 7명과 현장에 나간 평기자 7명 등 14명이 17일자 지면을 제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 측은 “논설위원들까지 사설 집필을 거부하고 있다. 통신사 기사를 옮겨 쓰거나 자매지인 서울경제 사설을 갖다 쓰고, 기자가 아닌 상무가 사설을 쓰는 등 비정상적으로 제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편집기자들이 1층에서 항의 집회 중이고, 예전 아르바이트생이나 편집 데스크가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온전한 지면을 만들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밝혔다.

 이날 사측이 요구한 '근로제공 확약서'에 동의하지 않은 한국일보 기자 180여 명은 편집국 출입은 물론 집배신 접속이 차단된 상태다. 이들이 집배신에 접속하면 “사용 중지된 ID”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비대위 측의 한 기자는 “회장이 용역까지 동원해 편집국을 봉쇄하고, 편집규약을 깡그리 무시한 서약서를 강요하고 있다”며 “회장의 배임이라는 개인 비리를 덮기 위해 한국일보 편집국, 넓게는 한국의 언론문화마저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진열 한국일보 사장은 16일 입장을 내고 “노조의 유일한 목적은 '회장은 물러나라'는 것인데, 한마디로 '추가로 돈을 못 내는 오너이니 다 놓고 나가라'는 식이다. 편집국 정상화를 위한 적법하고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사측의 한 관계자는 “17일자는 평소 32~36면보다 축소돼 24면을 발행하지만 제작에는 차질이 없다”며 “정상적인 제작에 동참하려는 이들에게는 문이 열려 있다 ” 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1일부터 '이중 편집국' 체제로 운영돼왔다. 사측이 이영성 편집국장을 보직 해임하자 이에 편집국 기자들이 보복 인사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앞서 비대위는 4월 29일 장 회장이 개인적 빚 탕감을 위해 회사에 2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며 장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