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5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나라,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나라, 대통령이 국격을 강조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언론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세계 178개 나라 중 42등, 국경없는기자회가 평가한 2010년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다. 2009년보다는 등수가 올랐다. 기자, PD, 블로거들이 잇따라 구속되고 체포되었던 지난해에는 69등이었다.

일부 국내 언론은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가 오른 사실에 의미를 부여했다. 연합뉴스, 동아일보, 서울신문 등은 ‘급등’, ‘껑충’, ‘가장 큰 상승폭’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이들은 순위 뿐 아니라 한국의 언론자유도 ‘크게 개선’ 또는 ‘상대적으로 크게 개선’ 되었다고 보도했다. 순위 상승의 의미가 언론자유 개선에 있다기보다 ‘지난해 급격히 악화되었던 언론 상황이 종전 수준으로 회귀된 것에 불과하다’는 국경없는기자회의 설명은 보지 못했는지, 일부러 뺐는지 기사에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연합뉴스와 서울신문은 순위 상승의 이유를 ‘언론인에 대한 체포와 폭력이 중단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방송사들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MBC와 SBS는 아예 보도하지 않았고, KBS, YTN, MBN 등 이를 기사화한 방송사들도 한국의 순위 상승에는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신문과 방송의 이러한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현 정부의 언론 정책은 주로 방송계의 반발을 불러왔다. 낙하산 사장 파동이 YTN, MBC, KBS에서 벌어졌고 미디어법 반대 투쟁이 방송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대부분의 방송사들이 파업 투쟁으로 정권의 언론장악에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수백 명의 방송인이 사법처리와 징계, 지방유배(부당 전보발령) 등의 탄압을 받았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올해 언론인에 대한 구속과 체포 등이 없었던 점을 평가했지만 올해에도 언론인 2명이 해직 당하고 수십 명이 징계, 기소 등의 탄압에 직면했다. 이를 경험으로 아는 이들에게 69등과 42등은 그저 숫자의 차이일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일부 언론의 보도를 심각한 오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순위가 오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의 현실은 69등에서 42등으로 언론자유지수의 순위가 오른 것처럼 결코 개선되지 않았다. 언론인 스스로 이러한 현실에 둔감하다면 그것이 오보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축구 월드컵 4강을 경험한 나라, 세계 10대 부국이 목전이라며 힘을 내자는 나라에서 42등은 창피한 등수임이 분명하다. 1년 전보다 순위가 오른 것의 의미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늘 30~40등 정도 하던 학생이 한번은 컨닝하다 들켜 한 과목 0점 처리를 당하는 바람에 69등으로 떨어졌다가 그 다음 시험에서 다시 42등을 했다. 이 학생은 실력이 나아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