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노사 양측 모두에 친한 사람이 있다는 한 중앙 언론사 기자는 YTN 해직사태의 전말을 깊게 알지는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굉장히 심각한 상태이고 그것이 YTN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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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양쪽으로 갈라진 지인들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으니 극단적으로 분열의 골이 패어 있다는 걸 느꼈다. 다른 건 몰라도 조직이 조직답게 굴러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YTN이 그래서 요즘 이렇게 힘들구나 싶었다.”

오는 6일로 해직사태 5년을 맞는 YTN이 예전부터 이렇게 갈라져 있던 것은 아니다. YTN 기자들은 “우리 회사는 그만 두고 싶어도 동료들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가 없는 조직이었다”고 말한다. 보통 한번 사표를 낼라치면 선후배, 동료들이 집까지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고 눈물을 쏟는 모습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다 차마 발걸음을 돌릴 수 없어 주저앉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6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던 고난을 끝내 이겨낸 공동체 의식이 YTN의  ‘엔진’이었다는 설명이다. ‘고난의 행군’ 시절 여기저기 빚을 진 기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당장 쌀 걱정을 하고, 가족들을 아예 처가로 보내기도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자기 집안의 생활고도 문제지만 취재비용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묵묵히 인내하는 후배들이 안쓰러워 밥 한끼라도 사먹이려면 기약없는 월급날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YTN 구성원들은 체불임금의 절반을 회사 증자를 위해 내놓았다. 많게는 70%까지 임금을 깎았다. 남산 서울타워를 인수할 때도,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때도 사원들이 스스로 주머니를 털고 은행 대출까지 받았다. 회사 회생과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했지만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IMF 1년만에 50명이 살길을 찾아나갔으니 다른 인생을 꿈꿀 수도 있었다. YTN의 한 기자는 “동료와 회사에 대한 애착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똘똘 뭉친 구성원들의 힘 덕분에 YTN은 차츰 일어서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개국 이래 처음 흑자를 기록하더니 2004년에는 수송동 사옥 더부살이를 끝내고 남대문 YTN타워로 이사했다. ‘제2창사’였다.

지금은 YTN을 떠난 한 기자는 당시의 일화를 떠올렸다. “한 선배와 술 한잔 하는 자리였다. 이런저런 회사 이야기를 하다가 ‘선배, 이제 경영도 큰 걱정 없고, 기사도 쓸 거 다 쓰잖아요. 인지도 때문에 고생도 안하고요. 정말 요즘 같은 때가 없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 선배도 웃으며 ‘위하여’를 외치던 그날이 선하다.” 얄궂게도 그 후배는 해직사태 이후 회사를 떠났고 그 선배는 지금 사측의 중심에 있다.

또 다른 터널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형, 동생’했던 선후배들이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눈길을 피하는 날이 오리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YTN 기자들은 해직사태가 5년까지 끌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해직자들 본인도, 사측조차도 그랬다. 사태 초기 한 간부가 “이러다가 이 정부 5년 내내 갈 수도 있다”는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그냥 하는 말이려니 했다고 한다. 갈등 양상은 치열했지만 지나가는 홍역이겠거니 믿었다고 한다. 지금 YTN은 대통령이 바뀐 뒤에도 해직의 상처를 부여 쥐고 신음하고 있다.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처럼 YTN 해직사태는 조금씩 잊혀지는 듯 보인다. 외부의 시선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남대문 6차선 대로에 서있는 YTN타워 속에서는 아직도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시청률은 떨어지고, 경영은 수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서로 책임 소재는 다르게 보겠지만 YTN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간부든 노조원이든 없는 듯하다. 다들 속으로 울분과 증오를 감추고 있다. 뭐가 문제인지 알고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꺼내놓고 이야기를 안한다.” 한 중견기자의 푸념이다.

하지만 시간은 YTN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채널 경쟁체제와 신사옥 이전을 앞두고 YTN의 앞날을 위해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근 발족한 경영진 직속의 콘텐츠TF는 새 프로그램 개발 등 YTN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연구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해직사태에 대한 입장보다 회사 살리기에 대한 열의와 실무 능력을 중심으로 젊은 사원 6명을 꾸렸다. 노조에 적극적인 사원들이 발탁되면서 일부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경영진은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범 자체만 해도 의미가 있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 사내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또 YTN노조가 5~6일 떠나는 해직 5주년 MT를 사측이 일정 지원을 하기로 했다. 2008년 해직사태 후 회사가 노조 공식행사를 지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월1일은 YTN에 뜻 깊은 날이다. YTN은 1995년 3월1일 낮 12시 정시뉴스로 첫 방송을 시작했다. 2004년 3월1일 새벽 6시엔 남대문 신사옥에서 첫 뉴스를 방송했다. 역사적인 첫 뉴스의 앵커는 각각 우장균, 현덕수 기자. 두 사람은 모두 해직 5년째를 맞은 해직기자다. YTN은 개국 20주년을 맞는 내년 3월쯤 상암동 신사옥으로 이전한다. YTN은 그 이전에 YTN의 ‘닻을 내린 사람’들을 역사에서 복원시키고 스무살 생일을 자축할 수 있을까. 상암동 첫 뉴스의 앵커가 누가 될 것인지 보다 더 주목되고 있다.

                                                             <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