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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 전광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발표가 중계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2016.11.29/뉴스1


담화는 말씀 담(談)에 이야기 화(話)자를 쓴다. 어떤 단체나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이나 태도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말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표현되는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3차 대국민담화에서도 기자들의 질의를 외면했다. 청와대가 수도 없이 반복했던 담화의 사전적 의미를 모를 리 없음에도 여전히 일방통행이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연설문이 다 읽히자 한 기자의 “질문있습니다”라는 외침이 들렸다. 박 대통령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여러 경위에 대해 소상히 말씀드리겠다”고 꼬리를 말았다. 하지만 기자들은 곧바로 “최순실 씨와 공범 관계를 인정합니까? 몇 개의 질문이라도 받아주십시오”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질문을 외면하며 황급히 사라졌고, 기자들은 허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기자회견 전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담화는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자리”라며 “수사와 관련해 질의응답 하는 자리는 조만간 마련하겠다”고 기자들에게 이해를 구했다. 이에 반발한 일부 기자들은 항의의 뜻으로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이번 담화는 대통령 개인의 생각을 읊조리는 푸념의 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할 말을 못 하게 막는 장본인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다. 또 국격을 훼손하고 국가 정체성을 뒤흔든 국민 기만행위이다.


국민의 요구와 의견을 대변하는 기자들과 서로 질의응답을 하지 않는 대통령의 모습은 ‘불통’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남녀노소·좌우를 가릴 것 없이 온 국민들은 답답함으로 한숨만 내쉬고 있다.


언론단체로 구성된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이번 3차 담화내용에 대해 “자신을 지켜주리라 믿는 한 줌의 국회의원들과 일부 충직한 언론사 간부들만을 향한 독백”이라며 “담화 소식을 듣고 기다리던 국민, 돌아서는 등 뒤에서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한때 ‘청와대 출입기자’라는 타이틀은 많은 기자의 선망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선 피하는 자리가 돼버렸다. 그동안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질문도 못 하고 들러리만 서는 기자들’이라는 비아냥을 안팎으로 받아왔다. 일부 기자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괴로운 심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기자들은 국정 취재를 보도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런 기자들을 방청객 정도로 생각하는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 탄핵 이전에 기자들의 탄핵을 먼저 받아야 한다. 기자들에게는 ‘공정한 보도’가 원칙이지만 공정하지 않은 대통령 앞에선 공정한 기사가 나올 리 만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