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 사건의 주역이었던 환산 이윤재(1883~1943)의 전기가 처음으로 나왔다. 제목은 <우리말 우리역사 보급의 거목 이윤재>(역사공간)다.

경남 김해 출생의 환산은 대구 계성학교에서 공부한 뒤, 평북 영변의 숭덕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3·1 운동에 가담해 1년6개월간 복역했다. 출옥 뒤 중국으로 망명했고, 이때 단재 신채호의 영향으로 민족주의 역사학의 세례를 받았다. 그는 조선어학회 기관지인 ‘한글’을 창간해 편집진으로도 활동했다. 우리말, 우리 역사의 보급이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날 길이라고 본 것이다.

조선어학회 소속 학자들과 함께 한글맞춤법을 통일하고, 조선어사전을 편찬했다. 그러다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돼 함흥형무소에 수감됐다. 환산은 재판에서 “우리 민족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범죄가 되지 않는다”며 “그것은 강탈당한 물건을 되돌려받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은 환산을 집중적으로 고문했다. 3·1 운동 참여 경력, 민족주의 역사학자로서의 이력 때문이었다. 그는 고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형무소 독방에서 1943년 12월8일 옥사했다.

올해로 환산 서거 70주년이 됐지만 그의 전기가 나온 것은 남북한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한글학회 연구위원이자 이극로연구소장인 박용규 박사가 쓰고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기획했다. 1만3000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