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TV쇼 진품명품’ 진행자 교체에 따른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KBS는 일방적인 진행자 교체에 반발하는 제작 PD 전원을 타 부서로 발령하는 강수를 뒀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다시 복귀시켰으나 진행자 교체 방침은 철회하지 않은 채 지난 7일 녹화를 강행, 10일 김동우 아나운서 진행으로 첫 방송을 내보냈다. PD들은 연출을 거부하며 침묵시위로 버티고 있고,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와 KBS PD협회가 주축이 된 비상대책위원회는 경영진을 상대로 피켓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비대위 내부에선 이번 사태를 두고 “제작 자율성 침해의 결정판”이란 말이 나온다. 일방적인 진행자 교체 통보, 반발하는 제작진 전원 교체, 보직책임자인 CP의 녹화 진행 등 일련의 사태가 KBS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진품명품’ 제작진은 당초 “MC 교체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며, PD들의 참여 하에 MC 선정 문제를 논의하자”며 수습에 나섰으나, 경영진은 “MC 조정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으로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김 아나운서를 밀어붙이는 배경이 무엇인지를 두고 소문과 의혹만 무성한 상황이다.

KBS측이 밝힌 ‘MC 조정회의’란 KBS 내의 공식적인 조직체가 아닌 간부회의 성격이 강하다. 개그우먼 김미화 씨 등 ‘블랙리스트’ 논란이 뜨겁던 지난 2010년 김인규 사장 시절 MC 선정의 타당성 여부를 검증한다는 명목으로 국장급이 참여하는 ‘MC 조정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힌 이후 줄곧 논란이 되어 왔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MC와 출연자 선정이 ‘제작 자율성’에 속하는 PD의 고유 권한이냐, 사측의 인사권에 해당하느냐로 좁혀진다. 나아가 ‘제작 자율성’의 주체는 누구이며, 허용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문제와도 맞닿는다.

방송법 제4조는 “방송프로그램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KBS와 SBS는 자체 편성규약을 두고 보도위원회나 편성위원회 등을 운영 중이며, MBC는 공정방송협의회 운영규정을 통해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이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인사권’에 의해 제작 자율성이 통제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김재철 전 사장 시절 MBC ‘PD수첩’ 제작진 강제 인사 발령이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취재한 ‘시사매거진 2580’ 기자에 대한 업무배제 조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방송법 제4조에 대한 해석의 모호함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국회 방송공정성특위에서 “방송법상 방송의 자유와 공적 책임의 주체는 방송 종사자가 아닌 사업자에 있다”고 주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방송법 제4조 3항에는 사장이 임명하는 방송편성책임자의 자율적인 방송편성권만 보장하고 있을 뿐이다. 또 4항의 방송편성규약 관련 내용도 편성규약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제재 조치는 명시된 게 없다. 편성규약이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명무실한 방송법상의 방송편성규약을 실효성 있는 규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영방송 방송편성책임자에 대한 견제 장치도 시급하다는 언론계의 의견도 나온다. 책임자의 임면 과정에 일선 제작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과 개편 과정에서 단순히 취재 및 제작 종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되어 있는 현행 방송법을 개정해 방송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방송사 경영진과 취재 및 제작 종사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송 제작·편성위원회를 만들고 방송의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이 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반드시 거치도록 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