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권리와 취재 편의, 그리고 피의자 인권침해… 포토라인 딜레마

법무부가 지난 13일 ‘2019년 주요업무계획’을 발표하며 현행 포토라인과 피의사실공표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피의자의 인권과 언론의 자유·국민의 알권리를 조화롭게 보장하기 위해 수사공보준칙을 엄격히 준수하고 예외 적용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하며 이를 위해 언론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화 논의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 5일에는 포토라인 촬영과 관련해 피의자 사전 동의를 법에 명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 대표로 발의됐다. 이에 따라 피의자 공개소환 등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를 바탕으로 이뤄져왔던 포토라인 제도와 언론의 취재 관행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25년 역사 포토라인 변화 갈림길
포토라인은 제한된 공간에서 과도한 취재경쟁으로 인한 혼란과 불상사를 막기 위해 기자들이 자율적으로 만든 취재경계선이다. 형사사건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출석하기 전에 포토라인 위에 멈춰 서서 카메라 세례와 함께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뒤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이다.


포토라인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3년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의 검찰 소환이 계기였다. ‘초원복집 도청 사건’으로 고발된 정주영 회장이 검찰에 출두하자 취재진이 일시에 몰려들면서 아수라장이 됐고, 급기야 정 회장이 카메라에 찍혀 이마를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한국사진기자협회와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현 한국영상기자협회)가 공동으로 포토라인 제정 논의에 들어갔고, 이듬해 12월 ‘포토라인 운영 선포문’을 발표했다. 이는 2006년 한국인터넷기자협회까지 3단체가 참여해 만든 ‘포토라인 운영준칙’으로 구체화됐다.
그러나 준칙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지나면서 언론계 내부에서도 취재환경 변화에 맞춘 준칙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다. 포토라인을 둘러싼 갑론을박도 치열해졌다. 경찰이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운 것에 대해 편파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이재수 전 국가기무사령관이 수갑을 찬 채 포토라인에 선 뒤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이어지면서 피의자 인권 침해 논란과 함께 포토라인 존폐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포토라인 폐지를 지론으로 밝혀왔고 문무일 검찰총장도 점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에는 대검찰청 후원으로 ‘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에 관한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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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권리 신장 순기능도” VS “피의자 인권침해 더 크다”
포토라인은 해외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의 독특한 취재 관행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자리를 잡으면서 공익적 기능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두걸 서울신문 논설위원은 지난 1월 토론회에서 △국민의 알권리 신장 △수사 감시 효과 △거대범죄 예방 효과 등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이 논설위원은 “개별 언론사나 기자가 취재하기 어려운 공적 인물을 공개 소환해 밀실수사나 비밀 소환, 봐주기 수사를 차단하는 등 수사의 투명화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또한 취재현장에서 질서 유지 기능을 함으로써 취재원(피의자)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따라서 포토라인 자체를 무력화 할 것이 아니라 피의자 인권과 초상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준칙을 세분화하는 등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토라인의 위법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포토라인이 일종의 ‘사회적 형벌’로 기능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일단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유죄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포토라인을 피하면 “죄를 짓고도 뻔뻔하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에게 취재기자들이 던지는 “혐의사실을 인정하십니까?” 같은 질문이 범죄자로 낙인찍기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간지 A 법조기자는 “검찰에 출석하는 사진이 알려주는 것은 당황하거나 억울해하는 표정 말고는 별로 없다”며 “국민의 알권리에 별달리 도움이 되지도 않고 수사 감시 효과도 없는 출석 사진을 계속 실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왜 하필 지금…’ 취재 제한 우려도
포토라인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왜 하필 지금이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사법농단 수사로 판사들이 잇따라 검찰에 소환되고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청와대가 검찰 수사 대상이 되자 피의사실 공표에 제동을 건 것이라는 지적이다. 수사기관이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의 중압감을 수사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공개소환을 남발하고 이제 와서 인권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원상 한국영상기자협회장은 “예전에 협회 차원에서 포토라인 관련 세미나를 할 때 법무부와 검찰 어느 쪽에서도 참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며 “현장을 너무 모르고,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일방적으로 없애버리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밝혔다.


법무부는 일단 오는 6월까지 언론계·학계·법조계·시민단체 등 각계가 참여하는 공청회, 심포지엄 등을 개최해 의견을 수렴한 뒤, 7월부터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할 계획이다. 기본적으로는 비공개 소환 원칙 등 법무부 훈령으로 제정된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엄격히 지키며,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서도 원칙적으로 ‘기소 전 수사상황 일체의 공개’를 금지한 공보준칙을 준수하고 예외 규정 해석의 여지도 최소화 한다는 방침이다. 이로 인해 취재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가 제한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상파 방송사 B 고위 관계자는 “인권을 내세워서 검찰 수사의 밀행성을 높이려는 것”이라며 “공권력은 언제나 자기 재량권을 높이려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검찰 중심에서 법원 중심으로’ 개선 목소리도 높아
그러나 사회 전반의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취재환경도 변화하고 있는 만큼,  검찰 중심으로 이뤄져온 언론의 수사보도 관행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초동에 출입하는 법조기자단은 200명이 훨씬 넘지만, 주로 법원 보다는 검찰 중심이다. 그래서 수사 단계에서 떠들썩했던 언론 보도가 막상 재판이 시작된 뒤에는 시들해지곤 한다. 그러다보니 포토라인에 섰던 피의자가 나중에 무혐의 또는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언론 보도를 통한 명예회복은 크게 기대할 수 없다. A 기자는 “기소가 됨과 동시에 공소장이 법원에 도착하면 혐의에 대해서 기사를 쓸 수 있는데 그걸 수사 단계에서 굳이 써야 하나”라며 “형법이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는 것은 이로 인한 인권침해가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알권리를 위해 피의사실 공표가 필요하다면 수사기관과 함께 현행법을 어길 것이 아니라 우선 형법을 개정하자고 요구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