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2020년 ‘방송제도개선’ 기본 골격 발표…“지상파 독점사업권과 공적책무 교차 보조 작동 불능” “OTT, 공정경쟁 차원에서 필요한 규제 도입” “구글·페이스북도 콘텐츠진흥기금 내야”



방송통신위원회가 11월28일 ‘중장기 방송제도개선 및 미래지향적 규제체계 개편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방통위가 지난 4월 구성한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이 이날 자리에서 변화될 방송제도의 기본 골격을 발표했다. 2020년 총선 이후 본격적인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방송계 관심이 뜨겁다.

현재 방송의 법적 정의는 “방송프로그램을 기획 편성 제작하고 이를 공중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송신하는 것”(2000년 방송법)이다. 19년 전 정의에 따라 지상파 방송, 케이블방송, 위성방송이 나뉘었다. 2015년부터 스마트폰이 TV를 제치고 국민의 첫 번째 필수매체가 됐다. 미디어 이용자는 채널 단위 시청에서 프로그램 단위 소비로 전환됐고, 몰아보기가 보편화 됐다. 지상파3사 시청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2009년 IPTV가 등장했고, 2013년 VOD가 나왔으며, 2016년 넷플릭스의 한국진출을 시작으로 OTT 서비스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방송인지 통신인지 애매한 ‘경계영역서비스’가 등장했다. 변화된 환경에 맞게 기존 방송규제체계를 재구조화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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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방송미디어연구실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IPTV·종편이 들어오며 지상파 독점체제는 붕괴했다. 지상파가 갖고 있던 독점사업권과 공적책무의 교차 보조는 작동 불능 상태다”라며 “2000년 방송법 체계를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원 실장은 “OTT 동영상 서비스의 글로벌 사업자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고 국내 사업자 경쟁력확보를 위한 정책방안이 필요하다. 규제체계는 공적영역과 민간영역으로 분류하고 기존 교차보조 시스템은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방통위 제도개선 추진반은 교차 보조 시스템을 폐기하고 △공·민영 방송규제체계 재구조화 △국내외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기술중립성 지향을 제도개선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 황준호 KISDI 연구위원은 “방송통신서비스와 유사하지만 규제가 약했던 다양한 OTT에 대해 공정경쟁 차원에서 필요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제도개선안에) 규율대상·내용규제·과세 측면에서 OTT를 확대 포함했다. 해외도 OTT 서비스 일부를 규제체계 내로 포함 시키고 있다. 디지털세 시도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EU는 2018년 11월 시청각미디어서비스지침(Audiovisual Media Services Directives) 개정안을 채택했다. 개정안은 시청각미디어서비스를 텔레비전·VOD·동영상공유플랫폼으로 나눠 유튜브·페이스북에서 유통되는 시청각콘텐츠도 규제의 틀 안으로 포섭했다. 황준호 연구위원은 “제도개선 추진반에서는 방송 개념을 방송이 아닌 방송서비스(역무)로 정의하고 시청각미디어서비스(가칭) 개념을 신설해 방송서비스를 포지셔닝할 계획”이라고 했는데, EU에서 등장한 개념을 차용한 대목이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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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미디어서비스 개념 도입은 학계에서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 ‘방송문화’ 가을호에서 “방송이 아닌 역무를 방송처럼 규제할 방법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방송을 대신할 새로운 개념, 예컨대 ‘시청각매체’ 등과 같은 포괄적 개념을 도입해서 매체 규제에 대한 접근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이날 제도개선 추진반은 OTT와 방송서비스 간 규제 불균형으로 공정경쟁과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의 효과적 대처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유료방송의 경우 진입에서 허가(지상파, 케이블 등)와 승인(종편, 보도채널, 홈쇼핑), 등록(일반PP)을 받아야 하지만 OTT는 신고만 하면 된다. OTT는 소유겸영·편성·채널구성·점유율·경쟁 부분에서의 적용규제가 없다. 유료방송은 내용에서 방송심의규정, OTT는 정보통신심의규정을 적용받는다. 이에 따라 나영석PD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유튜브에 선공개되면 정보통신심의규정, tvN에 방송되면 방송심의규정을 받는 상황이다.

황준호 연구위원은 “동영상 공유 OTT가 방송시장을 위협하고 있지만 방송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규제 형평성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며 “방송통신설비(네트워크), 전송기술, 수신방식, 제작은 방송서비스를 규정하는 요소에서 제외할 것”이라 밝혔다. 제도개선 추진반은 시청각미디어서비스 개념을 신설하면 그 아래 ‘실시간 서비스’와 ‘주문형 서비스’를 나눠 실시간 서비스는 실시간 방송과 실시간 OTT로, 주문형 서비스는 VOD(방송, OTT)로 분류가 된다고 설명했다. 방송망과 인터넷망이 모두 시청각미디어서비스 범주에 포함되는 식으로 ‘방송’ 개념이 재설정된다.

황준호 연구위원은 “방송사와 OTT사 간 금지행위 규제 및 분쟁 조정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시장 경쟁상황평가를 위해 기초자료(매출, 가입자, 상품정보, 요금, 이용실태 등)제공을 의무화해야 한다. 특히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은 해외 OTT의 기초자료 제출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제도개선 추진반은 유료방송까지 방송으로 포함하고 OTT만 시청각미디어채널(플랫폼)로 분류하는 안, 방송은 지상파에 한정하고 유료방송과 OTT를 시청각미디어채널(플랫폼)로 분류하는 안을 놓고 고민 중이다.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이 내놓은.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이 내놓은 방송통신 서비스 분류체계.


또한 추진반은 OTT 유해물 규제의 법적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며 방송보다는 완화된 심의기준을 적용하거나, 망법·정보통신심의규정에 동영상 콘텐츠 규제 조항을 신설하는 안을 놓고 고민 중이다. EU의 ‘시청각미디어서비스지침’에선 ‘동영상공유플랫폼’에 폭력 및 혐오 콘텐츠와 같은 유해 콘텐츠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할 의무를 부여했다.

앞서 김여라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입법조사관은 최근 ‘이슈와 논점’에서 새로운 미디어서비스 출현에 따른 방송법 개정의 과제를 가리켜 “중요한 것은 기존의 텔레비전 방송부터 VOD, 온라인 동영상 제공사업자까지 각 사업자 간의, 그리고 국내 및 해외사업자 간의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의 틀을 명확하고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콘텐츠를 일정 분량 이상 제공하도록 하는 콘텐츠 쿼터제와 국외에서 이루어진 행위라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 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역외 규정 신설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제도개선 추진반은 △기술중립적 서비스기반 면허시스템을 도입해 서비스 간 기술결합 및 기술혁신 유도 △방송통신 생태계 내 다양한 사업자(방송, 통신, 제작, CP, 가전, 포털, SNS등)가 참여하는 진흥기금 조성 검토를 시사하기도 했다. 황준호 연구위원은 “해외 사업자도 징수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를 고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종의 면허세처럼 부과되는 현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콘텐츠진흥기금 형태로 바꾸면 CJENM과 같은 대형 MSO 사업자를 비롯해 구글과 페이스북과 같은 해외CP에도 기금을 받아 이를 국내 콘텐츠 제작에 투여하는 식의 선순환 구조를 유도한다는 의미다.

한동섭 한국방송학회장은 이날 “(방송환경이) 너무 빨리 변하면서 규제체계가 잡히지 못했다.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이 플랫폼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한 뒤 “규제의 반대가 진흥은 아니다. 좋은 규제를 만들면 진흥도 된다”고 강조한 뒤 “이용자 중심에서 사고하며 통합적 규제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