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신문사 사측 재량근로 제안에 각 사 노조 잇따라 퇴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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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상한 근로제 처벌 유예 기간이 지난 3월 말 종료된 가운데 이에 대응한 신문사 노사 간 협상이 공회전 하고 있다. 특히 재량근로제 도입을 쟁점으로 평행선을 달리는 모양새다. 최근 주요 신문사 사측은 재량근로제를 제안했다가 각 사 노조로부터 잇따라 퇴짜를 맞았다.


동아일보 노조는 지난 14일 대의원총회에서 회사가 제시한 2019년 임금·단체협상안을 만장일치로 부결(찬성 0표, 반대 23표)시켰다. 쟁점은 유연근로제 도입이었다. 사측은 임금 인상안과 함께 재량근로제(기자), 간주근로제(마케팅본부·AD본부), 탄력근로제(전 사원 3개월)를 제안했고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21일 노보엔 “재량근로제를 도입하려면 주 52시간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이 충분해야 하고, 실근로시간을 산정해 간주시간을 정할 필요가 있는데 회사안은 이런 부분이 빠져있다” “적정한 보상과 휴식권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란 불신이 많았다”는 총회 당시 발언이 담겼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사 사측도 재량근로제를 제시했다가 최근 노조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보상안과 준수대책이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겨레의 경우 노조는 회사안 중 탄력·간주근로제는 일부 조건을 전제로 원칙적 찬성의 뜻을 밝혔지만 “기자직을 중심으로 도입을 요청한 재량근로제는 악용 우려가 커서 동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한겨레 사측은 당초 ‘주 44시간’, ‘주 42시간’, ‘주 40시간’ 근무로 편집국 부서·직무를 구분하는 재량근로 방식을 제안했다. 이 방식을 유지할지는 미지수지만 회사는 재량근로제 틀은 유지할 방침이다. 한겨레 관계자는 “재량근로제 시행을 포함해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안을 고민하고 있고 6월 시범실시 여부 등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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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주 52시간 상한 근로제가 시행된 후 재량근로제는 언론계에서 주요 이슈로 거론돼 왔다. 노조 사이에선 ‘워라밸’을 표방한 법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려를 표해 온 제도였다. 이에 지난해 9월 중앙일보·JTBC 노조가 사측 제안에 거절방침을 전하기도 했다. 전영희 중앙일보·JTBC노조위원장은 “(휴일수당 감소로 준) 월급에 대해 지난해 11월부터 방송(매달 보도수당)은 52시간 체제 이전 받던 수당에 준하는 정도, 신문(매달 제작수당)은 60% 수준으로 부족분을 주고 있다”며 “주 52시간과 관련해 근무형태 변화는 노사 모두 전혀 얘기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상당수 신문사 노조조차 유연근로제 도입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유연근로 방식 중 재량근로제에 대해선 난색을 표한다. 근무시간 감소에 따른 수당보전, 대휴 보장 및 휴가 준수는 여전히 쟁점이지만 재량근로제는 이 모든 논의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해당 제도는 근로시간 배분과 업무방식을 근로자 재량에 맡기고 실제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사용자와 근로자대표가 합의한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한다. 실제 근로시간은 위법인데 서류상 근로시간은 위법이 아닐 수 있다. 그동안 근로시간 고려 없이 일해 온 기자직군의 일상은 이 재량근로제가 실현된 데 가까웠다.


최근 신문사 사측이 내놓은 재량근로제 안은 주 52시간 대응과 기자 업무 특성에 따른 위법논란 해소가 함께 고려된 결과로 보인다. 근로제를 준수하되 재량근로 포함 유연근로제 도입에 필수적인 서면합의를 받고 대형사고 발생 같은 장시간 취재·기사작성에 따른 법 위반 여지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사정은 이해되지만 현 흐름은 노동의 측면에서 지난해 노사합의를 이룬 언론사보다 후퇴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


연합뉴스·경향신문 노사는 지난해 재량근로제를 제외한 일부 유연근로제 도입을 골자로 주 52시간에 대응한 노사합의서에 서명한 바 있다. 나아가 기존 재량근로제와 맞물려 근로시간과 상관없이 직무나 보직에 따라 일정금액을 지급받는 포괄임금 수당체계를 시급으로 개편했다. 포괄임금제 일변도의 언론계에서 없었던 행보다. 양사 노조는 장기적으로 통상임금까지 기준금액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각각 임금피크제와 임협 등 다른 사안 논의에 한창이다.


재량근로제 도입이 곧장 기자 근로조건 악화로 이어지리라 보긴 어렵다. 개선 요구는 있지만 이미 ‘주 5일’ 근무와 대휴 등 휴식권이 보장되는 분위기가 상당히 자리 잡은 상황이어서다. 실제 지난해 재량근로를 토대로 회사-근로자대표 합의를 이룬 머니투데이 내부에선 주 40시간 기준 근로시간이 준수된다는 평이 나온다. 머니투데이는 지난해 7월부터 토요판을 없애고 주 5일 발행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한 기자는 “오전 9시~오후 6시 근무가 보통이고 증권부 등 오전 7시30분에 출근하는 부서는 오후 4시30분에 퇴근한다. 주말 당직 땐 대휴를 쓰고 있고 당직비도 두 배 정도 올랐다”면서 “합의가 잘 지켜져 아직까진 잡음이 없는데 윗분 중에 ‘너무 8시간만 채우고 퇴근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다만 재량근로 도입 시 근로조건이 전적으로 사측의 선의에 놓인다는 우려도 있다. 한 언론사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기자들을 생각해서 운영하면 잘 굴러갈 순 있다. 하지만 자칫 아무 것도 받지 못하고 우리가 가진 권리를 넘긴 게 될 수 있다. 회사 경영진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노사 협상과 더불어 주 5회 발행을 시행 중인 서울신문사는 재량근로제를 배제했다. 장형우 언론노조 서울신문지부장은 “재량근로를 넣을 사유는 너무 많다. 그렇게 하고 나면 사실상 주 52시간 자체가 형해화될 거라고 봤다”며 “처음엔 ‘신문 이렇게 만들면 안된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이젠 없던 일처럼 또 신문을 만든다. 적응을 하고 나면 당연시 되고 그게 문화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