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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독립기구’ 탈을 쓴 ‘국가검열기구’ 이대로 괜찮은가 < 이상한 나라의 방통심의위 < 사회 < 금준경, 박서연, 박재령, 윤유경 - 미디어오늘 (mediatoday.co.kr)


[이상한 나라의 방통심의위]
‘민간독립기구’ 출범했지만 정치적 구조에 태생적 한계
최고수위 제재 남발하면서 ‘의견조율’ 사라진 류희림 체제
정치권 추천 비중 조정·공정성 심의 민간 이양 등 필요성 

방송과 인터넷을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민간’기구일까, ‘행정’기구일까. 

정답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는 ‘민간독립기구’로 규정돼 있다. 구성원들도 공무원이 아니다. 지난 9월27일 서울행정법원은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등이 윤석열 대통령의 해촉 결정에 불복해 낸 집행정지 신청이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보고 ‘각하’했다. 방통심의위가 민간기구이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해촉’ 결정이 ‘행정처분’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행정기구’로 판단했다. 2012년 헌재는 대통령의 ‘위촉’을 대통령 임명과 같은 개념으로 판단했고, 법에 근거해 설립되고, 제재를 결정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행정기구라고 봤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방통심의위 체제는 2008년 미디어기구 재편의 산물이다. ‘방통융합’ 기조에 맞춰 방송통신위원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방송 내용 심의를 담당하면 ‘국가검열’로 볼 소지가 커 심의기구를 민간독립기구로 분리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3인을 추천하고 국회 추천권(6인)을 여야가 3:3으로 나눠 갖는 6:3 위원회가 되면서 ‘독립’ 취지가 퇴색됐다. 국가행정기구의 역할을 하면서도 민간독립기구이기에 ‘책임’을 피하는 이중성도 보였다.

전반적 흐름을 보면 방통심의위의 운영이 공정하지 않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보수정부에선 KBS ‘추적60분’, MBC ‘PD수첩’, JTBC ‘뉴스룸’ 등 정부 비판방송에 중징계를 내리고 우호적인 TV조선, 채널A 등에는 ‘봐주기’ 심의를 이어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방통심의위의 자체 소송 내역 집계를 확인한 결과 완전 패소한 소송 8건 중 6건이 ‘정치심의’ 논란이 있었던 심의였다. 

심의가 ‘정파적 대립의 장’이 되면서 전문성보다는 정치인, 공안 검사, 뉴라이트 교수 등 정치적 색채가 강한 인사들이 위원으로 선임되는 문제도 반복됐다. 공천을 위해 도중 사퇴한 위원들도 있는데, 이들에겐 ‘심의’가 ‘공천’을 받기 위한 활동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류희림 체제, 구조적 문제 악용된 극단적 사례

지난 9월 출범한 류희림 체제의 방통심의위는 이 구조가 ‘악용’된 극단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김만배 인터뷰를 다룬 뉴스타파를 인용한 KBS, MBC, YTN, JTBC 등에 과징금 제재를 남발했다. ‘과징금’은 이번 심의 전까지 방송 보도 부문 역사상 1회에 그쳤을 정도로 극도로 제한된 조치였다. 최근 심의 과정에선 토론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다수결 표결이 강행되고,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제재 수위를 통일하는 점도 특징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시도하지 않은 인터넷언론 심의도 강행해 방통심의위 내부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방통심의위의 ‘정치심의’가 문제가 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쟁점 안건임에도 유독 토론과 논의가 적은 상황이다. 


▲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일례로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KBS의 ‘문창극 후보자 검증 보도’를 심의한 방통심의위는 4시간30분의 격론 끝에 ‘전원합의’로 행정지도성 조치인 ‘권고’를 의결했다. 당초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의 의견이 ‘관계자 징계’ 4인, ‘주의’ 2인으로 나뉜 점도 현재와 다르다. 야권 추천 위원들이 ‘문제없음’ 의견을 내자 협의가 시작됐고 ‘행정지도’인 ‘권고’에 합의한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바른미래당에 대한 오보를 낸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심의 결를 보면 바른미래당 추천 위원과 정부·여당 추천 위원 3인, 자유한국당 추천 위원 2인 등 6인이 법정제재(중징계) ‘주의’ 의견을 냈다. 반면 다른 정부·여당 추천 위원 3인은 행정지도(경징계)인 ‘권고’ 의견을 냈다. 정부여당 추천 위원 절반이 ‘김어준의 뉴스공장’ 중징계를 결정한 것이다. 4기 위원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치매설 유튜브 영상 심의 때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도 ‘시정요구’(차단 또는 삭제)를 반대해 ‘해당 없음’ 결정이 내려진 일도 있다.

당시 심의 결과들이 모두 적절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추천 단위가 같은 위원들끼리도 다른 의견을 내고, 제한적이긴 했지만 제재 수위를 ‘조율’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점에서 5기 방통심의위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국회중심 추천 구조 개선 필요

문제의 원인은 ‘위원추천 구조’와 ‘기구의 역할’에 있다. 6:3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은 전부터 제기됐다. 특히 ‘국회 추천 몫’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박만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2012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심의위원 구성과 관련해 “헌법재판소 구성 모델처럼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이 각각 3인씩 추천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상현 전 방통심의위원장도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정치권에서 추천하는 (위원의) 숫자를 줄이고, 정치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을 더 엄격하게 규정해야 한다”며 ‘사법부’ 추천 몫을 넣는 방안을 제안했다.

▲ 2008년 7월 방송인총연합회와 이명박정권방송장악저지행동은 서울 목동 방송회관 1층 로비에서 방통심의위 ‘부당심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6:3 구조는 아직까지 변화하지 않았다. 사진=미디어오늘
▲ 2008년 7월 방송인총연합회와 이명박정권방송장악저지행동은 서울 목동 방송회관 1층 로비에서 방통심의위 ‘부당심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6:3 구조는 아직까지 변화하지 않았다. 사진=미디어오늘



윤성옥 위원은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정당 추천이나 행정부 추천 인원을 줄이는 방법”을 제안하며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사례를 들었다. 선방심의위는 교섭단체 정당별로 1인만 추천하고 시민단체, 언론인단체, 언론학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위원을 추천한다.

국회에선 관련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야당’이 됐을 때만 문제의식을 가졌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19대 국회 때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을 여야 동수로 구성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여야 비율을 5:4로 바꾸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을 외면하다가 야당이 된 후인 2018년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이 여야 추천 비율을 7:6으로 바꾸는 법안을 냈다. 이번에는 여당인 민주당이 호응하지 않았다.

위원회 구조를 다층으로 나눠 ‘전문성’을 높이고 권력을 분산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특별위원회를 소위원회로 전환하고, 소위별 독립적으로 심의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현재 방통심의위 특위는 언론계, 시민사회, 학계, 법조계 등의 인사들로 ‘방송’(13인) ‘광고’(10인) ‘방송언어’(11인), ‘통신권익보호’(11인)  등 부문으로 구성한다.

‘심의권한 대폭 축소’ 필요성도

심의 권한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방통심의위의 심의를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에 빗댔다. 강형철 교수는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를 차지한 곳에서 공정성에 대해 심의하는 건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말이 안 되는 걸 된다고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문제라고 하는 것들이 주로 국민 생활에 큰 지장 없는 정파적 현안이다. 형법상 명예훼손을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을 내용 심의를 통해 해결하는 건 전근대적”이라고 했다.

강형철 교수는 ‘통합형 자율규제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때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한 징벌적 손해배상 논의 당시 방송과 신문현업단체, 언론사주단체들이 통합형 규제 모델안을 만든 적 있다”며 “그런다고 소위 ‘가짜뉴스’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현재의 방식에는 부작용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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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통심의위 출범 1주년 당시 언론시민단체 공동기자회견. 사진=미디어오늘



통합형 자율규제기구안은 분쟁처리를 담당하는 자율조정인(옴부즈퍼슨)과 규약위반을 담당하는 자율규제위원회로 언론계 통합 자율규제기구를 구성하는 내용이다. 중대한 규약 위반에는 언론사에 제재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규약 위반의 경우 정정, 노출중단, 사과 등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벌점을 주고 벌점이 누적되면 제명도 될 수 있다. 강형철 교수는 “아예 자율규제에 맡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자율규제기구에 위임할 필요가 있다”며 “방송 공정성 객관성 심의라도 위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사람과 임명 방식을 바꿀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기구 자체를 축소해야 한다고 본다”며 “심의하지 않아야 하는 분야를 과도하게 심의하는 면이 있다. 특히 방송심의 전반이 현재 (뉴미디어 중심의) 매체환경에 맞지 않는 과잉심의라고 생각한다. ‘보도’영역은 매우 제한적인 심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동찬 위원은 “최소심의가 원칙인데 심의 건수 자체를 실적으로 보는 시선도 만연해 있다”고 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민간독립기구인 것처럼 만들었지만 정치적으로 구성했다”며 “심의 기준(조항)이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늘어난다. 표준어를 써야 한다는 등의 내용도 규정에 있다. 이는 좋은 방송을 위해 장려해야 하는 목적이지, 심의해서 징계할 대상은 아니다”라고 했다.

심석태 교수는 “미국은 FCC(연방통신위원회)가 직접 심의를 하는데 음란물이나 청소년에 대한 보호, 마약, 사기 콘텐츠 등에 한해서 형사처벌에 이를 수 있는 것들을 심의한다”며 “전문성 있는 공적인 국가행정기구로 만들되 대신 진짜 공권력이 해야 하는 일들만 엄격한 준사법적 절차를 통해 하고, 더 나은 방송을 위한 품질에 해당하는 것들은 손대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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