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업자’ 기준 놓고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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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볼 수 있는 넷플릭스는 방송사업자일까 아닐까.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정기적으로 유튜브에 업데이트 하는 노무현재단은 인터넷방송사업자일까 아닐까.


방송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방송 서비스가 등장하고 서비스간 장벽과 영역도 무너지고 있다. 과거 TV 수상기 중심이었던 방송환경은 온라인 기반의 뉴미디어 중심으로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20년 전 제정된 현행 방송법의 ‘리모델링’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이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일명 통합방송법이라 불리는 방송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방송법과 IPTV법(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으로 이원화된 방송 관련법과 지역방송발전 지원 특별법을 통합한 것이다. 여야 의원들이 참여하는 국회 언론공정성실현모임이 공공미디어연구소와 함께 1년 넘게 준비해온 법안은 공개와 동시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사업자와 MCN(멀티채널네트워크), 1인 미디어 등을 방송 사업자로 분류해야 하는지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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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방송이고 유튜브는 아니고


핵심 쟁점은 OTT 사업자의 법적 지위다. 통합방송법은 처음으로 OTT를 방송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인터넷 방송 사업자는 그동안 방송이 아닌 통신으로 분류돼 왔다. 현재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은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된다. 통신에서 방송의 영역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 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송은 통신과 달리 ‘공적 책임’을 부여받으며, 이에 따라 진입규제나 내용규제 등 다양한 규제를 받는다. 그래서 방송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여러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던 OTT 사업자 등에 대해 기존 방송사업자들은 규제 공백과 형평성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런 까닭에 통합방송법은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원칙을 강조한다. 기존의 수직적 규제체계를 수평적 규제체계로 전환하고 규제의 형평성을 확보하되 ‘최소한의 규제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은 방송사업을 지상파방송사업과 유료방송사업, 방송콘텐츠제공사업으로 크게 나눴다. 유료방송사업자는 다시 다채널유료방송사업자와 부가유료방송사업자로, 방송콘텐츠제공사업자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와 인터넷방송콘텐츠제공사업자로 분류했다. 주목할 것은 OTT를 부가유료방송사업자에 포함하고, 인터넷방송콘텐츠제공사업자를 방송사업자의 한 유형으로 신설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기존 방송사업자의 TV 채널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티빙, 푹, 옥수수와 같은 국내 OTT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같이 실시간 채널은 없지만 가입자 기반의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 OTT도 부가유료방송사업자에 해당한다. 반면 일부 실시간 방송이 있지만 가입자가 아니어도 이용 가능하고 무료 서비스인 유튜브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논란이 됐던 1인 미디어는 원칙적으로 제외됐다. “주관적 커뮤니케이션 자유가 보장되는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인터넷 개인방송이라 하더라도 유료방송사업자에 판매, 공급할 경우 인터넷방송콘텐츠사업자로 지위가 바뀐다. 예를 들어 ‘홍카콜라’나 ‘알릴레오’도 유튜브에서만 방송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케이블채널이나 OTT 등에 돈을 받고 콘텐츠를 판매할 경우 방송사업자에 해당하는 규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 시점 미디어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자인 유튜브는 방송법 적용 대상에서 비켜갔다. 그러나 유튜브가 ‘유튜브 프리미엄’이라는 가입자 기반의 유료 서비스를 하고 있는 만큼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부가유료방송 신고 사업자는 ‘이용자와의 계약 여부’가 쟁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튜브뿐 아니라 기존의 OTT 사업자도 사업 모델 변화에 따라 방송사업자가 되었다가 아니었다가 할 수 있다. 법안을 만든 연구반 내에서도 논쟁이 치열하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통합방송법 관련 세미나를 앞두고 아프리카TV를 부가유료방송사업자로 분류했다가 최종 발제문에선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로 놔둔 것도 그래서다.


모호한 개념과 분류 기준 때문에 법안이 혼란을 가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JTBC의 웹예능 ‘와썹맨’이나 SBS의 ‘스브스뉴스’는 방송인지, 이번 논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팟캐스트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 의문은 꼬리를 무는데, 속 시원한 답을 듣기는 힘들다. 게다가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글로벌 기업을 규제하려고 할 때 한미FTA 협정 등 국제 통상 협정에 위반되는 것은 없는지 등 살펴야 할 것도 많다. 후속 논의가 더 중요한 이유다. 박상호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은 “통합방송법은 만능법이 아니다”라며 “준거 틀과 기준을 제공한 것이고 나머지 부분들은 의견 수렴을 통해 합리적인 범주와 규제를 마련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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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에 대한 최초의 정의


통합방송법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지점은 공영방송에 대한 것이다. OTT 논쟁에 가려졌지만, 이번 법안의 핵심 중 하나는 공영방송의 개념을 최초로 정의하고 공적 책임을 명시했다는 데 있다. 흔히 KBS, MBC, EBS를 공영방송이라고 하지만 방송법에 ‘공영방송’ 혹은 ‘공영’이란 단어가 등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에서 KBS와 MBC를 공영방송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통합방송법은 KBS, MBC, EBS를 공영방송사로 정의하며 “공영방송사는 방송의 공적 책임을 실현하고 방송을 통한 국민문화의 향상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국가가 공영방송사에 대해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명시했다. 이에 따르면 수신료를 받는 KBS와 EBS만이 아니라 MBC도 재정적 지원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MBC에 수신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의미인지, 그렇다면 수신료 인상을 전제로 한 것인지, 수신료가 아니라면 다른 어떤 형태의 재정적 지원이 가능한지 등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MBC를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따른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로 정의한 것도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법안대로면 방문진이 최다출자자인 서울MBC만 공영방송이고 지역MBC는 공영방송이 아니다. 이에 대해 도건협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수석부위원장은 “지역MBC는 상법상 주식회사로 법적 지위가 애매하다”면서 “하지만 지역MBC는 모두가 지역 공영방송이라 생각한다. ‘방문진이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 및 그 계열에 있는 지역방송사’ 같은 식으로 법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언론·시민단체들은 20년 만에 방송법 전부 개정안이 나온 것을 환영하면서도 법안의 포괄 분야와 주요 내용에 대한 조정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방송독립시민행동은 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현업 언론인, 다양한 계층을 대표하는 이용자 국민, 미디어학계와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면서 정부에 ‘(가칭)미디어개혁국민위원회’ 구성을 공식 제안했다.


연구반 측은 현 상황이 ‘과도기적’이며 의견 수렴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성수 의원실 관계자는 “여전히 쟁점도 많고 논의해야 할 것도 많지만 논의의 시작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법안을 발의한 것”이라며 “공론화를 통해 OTT나 공영방송 문제를 논의하고 용어와 법률 체계도 정비해 정기국회에서 심사하는 것을 목표로 이슈화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