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판결 봐야” MBC 노사 앞에 고심하는 단체들… 언론과 노동 일부 시각 차이도


16·17 사번 계약직 아나운서에 대한 MBC의 격리·배제 조치에 언론계의 ‘고심 속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1심 판결을 지켜볼 것”이라는 MBC 노사 앞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MBC 노조의 상급단체인 전국언론노조도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MBC 본부 노조와 소통·조율을 한다는 입장이지만 문제 해결 주체로 적극 뛰어들진 못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노동권 침해 문제로 파장이 커지고 있는 이 사안은 언론노조에도 큰 부담이다.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왔던 언론시민단체 상황도 대동소이하다. 김동찬 언론연대 사무처장은 “내부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면도 있고 우리가 노동 전문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은 이 문제에 입장을 표명하는 데 대한 부담보다 계속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담을 더 느끼고 있다”고 솔직한 마음을 토로했다.

MBC 대주주이자 경영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도 ‘인사 문제’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방문진의 한 이사는 22일 통화에서 “MBC 인사 문제이다 보니 ‘아나운서들을 복직시켜라, 말라’ 이렇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다만 선의의 피해가 가지 않도록 대응을 잘해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사측에 전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아나운서 노동권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정규직화가 이뤄진다면 사측이 파업을 대비해 계약직을 채용하고 종국적으로 정당한 파업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MBC와 아나운서 측) 모두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밝혔다. 방문진도 사측과 마찬가지로 법원 판결을 지켜보자는 쪽이다.

이효성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방통위에서 (MBC에) 포용하는 게 좋다고 몇 번 얘기했다. 하지만 인사 문제라 개입 어렵다. MBC는 대법원까지 가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16·17 사번 계약직 아나운서 10명은 안광한·김장겸 전 MBC 사장 시절인 2016~2017년 1년 단위 ‘전문 계약직’으로 채용됐다가 지난해 계약 만료됐다. 노동위는 이를 ‘부당 해고’로 판정했고 법원은 본안 판결(해고무효확인소송)에 앞서 지난 5월 아나운서들의 근로자 지위를 임시 인정했다. MBC는 노동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5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출근한 아나운서들은 기존 아나운서 업무 공간(9층)이 아닌 별도 공간(12층)에 배치됐다. 격리된 채 업무를 받지 못하고 전산망마저 차단된 이들은 지난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위반을 이유로 고용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후 전산망 차단은 해제됐지만 나머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MBC는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지난 19일 16·17 사번 아나운서들 이야기를 청취했다.

MBC 안팎 노조와 단체가 침묵하는 까닭에 과거 경영진의 MBC 언론인 탄압, 특히 MBC 정규직 아나운서들의 아픔과 고통이 있다. 아울러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비제작부서로 쫓겨난 선배들 빈 자리를 채웠고 타 비정규직도 동참한 2017년 공정방송 파업에 함께 하지 않았다’는 내부 인식과 감정의 골이 깊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MBC 내부 목소리와 계약직 아나운서, 그들을 지지하는 진보 진영 목소리를 모두 들어본 입장에서 서로 성찰하고 사과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경우 비제작부서로 떠났던 기존 아나운서들이 받았을 상처를 조금 더 고심해줬으면 한다. 양쪽의 소통과 사과가 없다면 제도적 해결 이후에도 조화롭게 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목소리가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계 인사들을 중심으로는 MBC의 전향적 조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23일 통화에서 “가처분 인용을 봐도 1심 재판부는 계약직 아나운서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회사가 1심을 지켜본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 조치는 거둬야 한다”며 “시민사회가 MBC의 부당 노동 행위를 일단 지켜보는 까닭은 스스로 성찰할 능력이 있을 거라는 기대에 있다. MBC가 옳아서 기다리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MBC 노조 구성원 마음도 십분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어떠한 가치도 법률이 보장하는 노동권을 무력화할 수 없다. 공정방송 투쟁·파업이라는 가치 반대편에 ‘노동권’을 놓아선 안 된다. 두 가치를 모두 지킬 수 있는 대안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테면 공정방송 파업을 무력화하는 조치를 봉쇄할 수 있는 제도를 MBC 노사 단체협약에 반영하자는 것.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도 22일 칼럼에서 “최승호 사장의 MBC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1호 진정 사건이 됐다. 노동부 1호 행정 조치까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한 달만 더 기다려 보자고 미루며 현명한 조치를 기다린 노동 시민사회가 행동으로 나서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