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원장이 아니라 방통위를 바꿔야 한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청와대 외압 논란이 불거졌다.

방통위원장은 방송의 독립성을 위해 다른 장관과 달리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다. 이효성 위원장은 임기 도중 불분명한 이유로 사퇴한 첫 방통위원장이다. 그가 중간광고, 허위조작정보 대책 등에서 정부와 이견을 보인 상황에서 선거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해 청와대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효성 위원장의 중도 사퇴는 논란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어느 정부에서나 청와대가 방통위를 컨트롤해왔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정부 때 최성준 방통위원장, 이명박 정부 때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청와대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합의제 기구라는 말이 무색하게 역대 위원장들은 야당 위원의 반발을 무시하고 중대 사안을 밀어붙였다.

외압 논란과 별개로 이효성 위원장에 대한 시민사회의 평가도 박했다. 개혁 의지가 강하지 않고 추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정치권의 논쟁과는 별개로 일각에선 새로운 위원장에게 기대를 거는 이들이 적지 않다.


▲  지난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 허위조작정보 범국민대책 발표를 취소하고 돌아가고 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이효성 위원장은 허위조작정보 자율규제 대책을 강조하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 연합뉴스
▲ 지난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 허위조작정보 범국민대책 발표를 취소하고 돌아가고 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이효성 위원장은 허위조작정보 자율규제 대책을 강조하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 연합뉴스


그러나 시스템의 문제도 적지 않았다. 정부여당에서 3명, 야당에서 2명 위원을 뽑는 조직, 일반 부처와 같은 보고체계를 가진 이 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상 정치권의 의해관계를 벗어난 독립적인 미디어 개혁을 추진하기 힘들다. ‘산업’과 ‘정치’는 별개라지만 미디어는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미디어 정책은 특정 사업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결과를 낳는다. 이 키를 청와대가 쥐고 있으니 어떤 결정을 해도 정치적 배경을 의심받는다.

더구나 잔여임기 1년을 일하는 차기 위원장은 연임을 위해 청와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방통위는 이명박 정부 때 최시중 방통위와 달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상당한 권한을 내준 조직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원래 만들려던 방통위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2007년 미디어규제기구 개편을 앞둔 가운데 참여정부가 제시한 ‘초안’은 국가청렴위원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선거방송위원회 등의 선임 방식을 차용해 방통위원을 각계각층의 추천을 받아 구성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야가 정치권 주도의 선임방식을 요구하면서 결국 지금 같은 지배구조가 됐다.

위원 정수 조정, 추천 주체 다변화와 더불어 기구의 위상도 고민해야 한다. 2018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의 보고서도 주목할 만하다. 분권형 정부(이원정부)가 들어설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같은 ‘독립기관’으로 언론·통신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독립기관’은 헌법상에 ‘행정권이 정부에 속한다’는 조항을 삭제해 완전히 정부로부터 독립한다.

“정치권의 방송장악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며 이렇게 선출된 위원들에 의한 위원회 운영이 과연 정치적 중립성을 올바로 지켜낼 수 있는지 회의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2005년 1월 방송위원회 노동조합 노보 내용이다. 14년 동안 같은 지적이 반복됐다. 바꿔야 할 건 방통위원장이 아니라 방통위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