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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테뉴어교수' 심사 신청 35명중 15명 탈락 쇼크” 2007년 9월 28일 동아일보 1면 톱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가 보도되자 다른 언론사들이 앞 다퉈 같은 내용을 다뤘다. 동아일보 사회부 지명훈 기자의 특종이었다.

교수사회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교수=정년보장’ 등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테뉴어(정년보장) 심사에서 40%가 넘는 교수들이 탈락하는 등 고강도의 개혁 프로그램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평생직장’으로 여겨온 교수직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가속화되었다.

이는 서남표 총장이 추진하는 KAIST 개혁의 첫 신호탄이기도 했다. 서총장은 테뉴어 심사 강화를 시작으로 성적 나쁜 학생에게 등록금 부과, 100% 영어 강의 , 인성평가 위주의 입시 개혁, 학과장 중심제 등 KAIST 개혁을 숨가쁘게 이끌어 냈다.

서 총장은 과학기술계 및 교육계 개혁의 선봉장으로 급부상하면서 여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가 보여준 리더십과 KAIST의 개혁 실험은 관행에 찌든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 총장이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일련의 KAIST 개혁 관련 기사를 보도한 지명훈 기자가 책을 출간했다. ‘서남표 천일의 기록’(동아일보사, 부제 : MIT를 바꾸고 KAIST를 디자인한 총장)이 9월 2일부터 전국의 서점가에 장식됐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 대학’을 외치며 많은 대학들이 개혁 실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구호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에 반해 직접 보여준 사례가 바로 서남표 총장입니다. KAIST 개혁에 대해 언론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려졌지만 추진 배경이나 내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지 기자는 서 총장이 바꿔놓은 것은 제도가 아닌 ‘프레임’이라고 말한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다. 서 총장의 프레임은 크게 두 가지이다. 문제점 보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과감하게 문제에 도전하는 ‘태도의 프레임’이고, 문제의 목적과 본질에 충실한 ‘방법의 프레임’이 그것이다.

‘태도의 프레임’은 “그건 불가능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됩니다, 두고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서 총장이 추진한 일련의 개혁은 이런 프레임에서 시작됐다.

다른 하나인 ‘방법의 프레임’은 서 총장의 “나는 개혁하려 하지 않았다. 목적을 분명히 했을 뿐이다”라는 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스템을 재부팅하고 문제를 초기화해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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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명훈 기자


2006년 7월, 서남표 MIT 기계공학과 석좌교수가 ‘KAIST를 세계 최고의 이공계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KAIST 총장으로서의 3년 동안의 기록을 담았다. 여기에 러플린 전 총장의 개혁 실험도 다루고 있어 2년을 더하면 모두 5년의 기록이 된다.

지 기자는 저서에서 서 총장의 생애를 먼저 적었다. 서 총장이 KAIST에서 펼친 일련의 개혁이 그의 삶을 통해 투영되기 때문이다.

서 총장은 한국이 가장 혼란스러웠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 이 땅에 살았고, 십대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좋은 교육을 받았다. 또 다양한 직업과 경험을 접했다. 기업에서 기술자로 일했고,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했으며 미국 정부기관에서 근무했다.

지 기자는 서 총장의 이런 다양한 경험은 개혁의 목표를 정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또 하위 목표와 그에 따른 세부 전략을 세우는 등 일련의 개혁 추진 과정의 밑바탕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KAIST가 국내 대학 평가에서 1위에 오르고 다양한 개혁 프로그램이 성공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서남표의 힘’을 찾으려는 시각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한 서 총장의 독주에 대학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것도 사실이고 과학기술계의 안이한 연구 관행 지적에 따른 반발도 있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저자는 ‘서남표의 힘’을 기부에서 찾기도 했다. 700억원이 넘는 기부액수도 그렇지만 크고 작은 기부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KAIST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기부자가 선뜻 거액을 기부하는 것은 ‘서남표의 힘’ 때문이라는 것.

서 총장의 개혁 실험은 아직 진행중이기 때문에 저서를 통해 분석을 했지만 평가는 하지 않았다는 지 기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총장의 실험이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며 “초유의 실험인 데다 다시 그런 기회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저자 : 지명훈
1963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대전대학교 군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사회부 대전충남지역을 담당하며 현재 KAIST와 대덕연구단지, 대학, 교육청, 충남도청 등의 출입기자로 일하고 있다. 국내 대학의 개혁을 몰고 온 ‘KAIST 테뉴어 교수 기준 강화 후 첫 심사 신청 교수 대거 탈락’ 등 일련의 KAIST 관련 기사를 최초로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