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승선 충남대 교수, 미디어법 개정 관련 지역 언론시장 변화 전망

 

공공연하게 진실한 사실이나 허위의 사실을 밝혀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때 누구나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다만 그러한 사실의 적시가 진실하고 공공성이 있을 때 처벌을 면할 수 있는데 언론매체의 명예훼손 행위는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취급돼 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은 사회적 생명수라 할 수 있고 언론매체가 그러한 여론의 조성과 유통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언론사상의 핵심은 여론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하고 사회적 긴장과 체제를 유지해 갈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 나와 다른 타인의 의견 발표를 제한하지 않고 소수의 목소리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여론형성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이다. 생물과 같은 여론의 동향을 눈감고 귀막아 모르쇠하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여론을 왜곡하거나 조작하려는 행위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적으로 간주된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후세에 역사가 말해주리라’ 따위의 호도를 통해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한 여당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얕잡아보아도 한참 낮춰보았다. 1년여 전부터 미디어법이 처리된 작금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60-70% 정도는 변함없이 정부여당의 미디어법에 대해 반대해 왔다. 찬성하는 여론의 2-3배 수준으로 애초부터 국민들의 다수는 미디어법이 민생법안이라거나 일자리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정부여당의 강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미디어법 반대 여론은 국민의 통찰력에서 비롯

 

미디어법 처리 직전에 국회의장은 미디어법이 민생법안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내비쳤다. 2만 1천여개 일자리 창출의 근거로 제시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보고서도 통계조작 논란에 휩싸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사과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정부여당의 미디어법을 줄기차게 반대해 온 다수 여론이 무지와 무관심의 소산이 아니라 양식을 갖춘 국민으로서의 통찰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국민여론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신문법 대리투표 의혹과 방송법 재투표 무효 논란을 낳은 미디어법 처리를 강행했다. 국회 및 정당차원의 대리투표 의혹 조사, 방송법 등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법적 판단을 남겨 둔 시점에서 이 글은 강행처리된 3개의 법안과 기존의 미디어법과 관련한 논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미디어법은 미디어관련법, 혹은, 언론관련법 등으로 불려왔다. 신문법·방송법·IPTV법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망법 등을 포괄한 개념이다. 큰 틀에서 언론중재와 관련된 법, 방송광고판매와 관련한 미디어렙문제, 방송의 디지털전환에 관련된 법 등을 포함하고 있지만 일단 이번에 처리된 신문법·방송법·IPTV법에 국한해 그 내용을 살펴보자.

 

신문사와 대기업이 지상파방송,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에 진출할 수 있도록 3개 법률을 개정해 규제를 완화한 것이 이번 미디어법 내용의 핵심이다. 보도전문 채널을 추가로 승인하고 보도부문이 포함된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를 2-3개 정도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 여론다양성과 민주주의의 가치실현을 위해 유보, 혹은 규제해 왔던 신문과 지상파간의 겸영을 허용하고 신문과 대기업이 뉴스기능을 가진 종합편성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뉴스만을 제공하는 보도전문 채널에 신문사와 대기업이 30%까지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외국자본의 경우에도 지상파를 제외한 종편, 보도전문, IPTV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병주고 약주고, 어르고 달래고'

 

신문의 경우 복수소유금지 규정을 폐지해 다수신문을 거느리는 신문체인의 등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방송법 개정안은 방송사업자의 허가기간을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가상광고와 간접광고를 도입했는데 대신 방송사업자의 행위에 따라 규제기관으로 하여금 방송사업자의 방송광고를 중단시키거나, 혹은, 유효기간이 남았다고 하더라도 방송허가 기간을 단축시켜버릴 수 있도록 규정했다. 약과 병으로 방송사업자를 어르고 달랠 수 있는 기반이 강화되었다.

법안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대리투표·재투표 효력에 대한 논란을 제외하고도 미디어법은 여러 가지 쟁점을 낳고 있다. 우선 여론다양성 문제. 정부와 한나라당은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 채널을 새로 방송시장에 진입케 하면 기존 지상파방송 중심의 여론독과점이 해소되고 따라서 여론의 다양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미디어다양성위원회를 설치하거나 구독률 20%이상의 신문사업자의 방송진출 불허, 방송사업자 시청점유율 30%제한 조치 등을 통해 여론다양성의 침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다수의 언론학자, 야당 등은 이를 강력하게 반박한다. 신문시장을 과점지배하고 있는 소수 일간신문들이 방송여론시장까지 장악하게 될 것이며 더불어 자본의 이해를 직접, 첨예하게 반영하는 대기업 방송에 의해 여론다양성이 질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는 여론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시스템 작동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본다.

 

대기업 방송은 여론 다양성에 위협

 

또 미디어법 처리로 한국의 미디어들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가, 겸영허용과 방송규제 완화조치로 인해 고용이 크게 창출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돼 왔다. 미디어상품, 특히 방송 상품은 초기제작비용이 엄청나고 이후 발생하는 다양한 유통창구에 따라 소비자가 누증함으로써 평균제작비용의 감소를 가져오는 특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방송영상 상품은 문화적 할인, 즉, 언어나 문화적 특성 때문에 국경을 넘어 소비되는데 장애를 갖고 있다.

 

미국의 방송영상 상품이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상품소비자 시장이 광활한 관계로 막대한 제작비용을 자국에서 일차적으로 보전하게 되고, 따라서 외국의 미디어 시장에서는 지불 능력에 따라 다양한 가격차별화 전략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권 시장이 크다는 점도 반영된다. 일본미디어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구축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상품특성 및 시장구조를 통해 설명되곤 한다.

 

이번 미디어법 처리 이전에도 신문사, 방송사, 대기업이 세계 미디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은 제공되었다. 현재로서는 종합편성채널 시장에 일부 신문사들을 제외하고 참여의사를 밝힌 대기업은 많지 않다. 오히려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드러내거나 참여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디어법 처리가 한국 미디어의 국제 경쟁력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처지인 것이다. 고용창출 역시 새로운 채널의 도입으로 인해 일시적인 소폭의 고용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미디어 겸영에 따른 인력감소를 예상하곤 한다.

 

벌써 10여년 전에 미디어겸영을 크게 확대한 미국의 경험에 따르면, 미디어 합병에 따라 오히려 특정 부문의 언론종사자들이 감축되었다. 심한 경우에는 방송부문에 진출함으로써 기존의 신문경영 여건까지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미디어법의 경제적 효과를 미리 부정적으로 예단할 필요까지는 없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국책연구기관이 제시한 2만1천여개 고용창출효과, 혹은, 선진국 수준의 방송산업 규모에 도달함으로써 미디어산업의 경쟁력을 크게 제고할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신중하게 평가, 수용될 필요가 있다.

특히 문제는 미디어법 처리가 지역 언론에 미칠 파장이다. 이번에 처리된 방송법 등 3개 법안 외에 방송광고판매제도 변경과 관련된 법안이 있는데 지역방송의 생존과 직결될 여지가 크다. 그동안 종교방송과 지역방송 등 특수한 처지에 있는 방송사들에 대해 기존 방송광고 판매시스템은 최소한의 광고를 일정량 연계판매 해주었다.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 지역성 구현에 이바지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방송광고판매 제도는 지상파방송사들이 광고거래를 통해 광고주들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도록 완충역할을 해주었으나 앞으로 도입될 새로운 제도는 이러한 기능을 상당부분 제거하게 된다.

 

지역 언론의 경우 광고주들의 영향력이 증대하고, 대신, 광고수입은 크게 감소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에 종합편성 채널이 추가로 2-3개 신설될 경우 연간 8조원 미만의 전체 매체광고비가 양적으로 증가하는 대신, 기존 매체의 광고비를 종편으로 이전 집행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래저래 지역방송을 비롯한 지역 언론의 경영여건은 악화일로에 처해 있는 것이다.

 

지역 신문·방송·케이블·대기업 등 다양한 결합도 예상

 

미디어법 처리로 인해 지역 언론시장의 구조와 경영 전략은 일대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신문과 지역지상파, 지역지상파와 지역의 케이블, 지역의 케이블과 지역의 신문사, 혹은, 전국단위 신문과 지역신문·지역방송·지역케이블의 합종연횡, 대기업과 지역 언론매체간의 다양한 결합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형태의 소유구조 방식에도 불구하고 지역 언론의 시장구조가 갖는 특성상,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경영위기는 가속화하고 따라서 지역 언론매체의 약화, 지역민의 정보추구권 위축 등 참담한 현상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각적인 경영합리화 전략을 꾀하고 생존을 위해 동종·이종 매체와 다양한 결합방식을 모색하는 것, 관점이 있는 지역정보를 제공하는 것 등은 미디어법 처리 상황에서 지역 언론사의 몫이다. 지역 언론시장에서 횡횡하고 있는 전국단위 언론사들의 약탈적이고 불공정한 거래관행을 바로잡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더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지역정부가 지역의 언론 생존과 발전을 위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재정지원하는 방식에 대한 공론화 작업을 시도해 볼 때라고 본다.

 

지자체와 지역 언론간의 직접적인 광고와 정보거래를 지양하고 대신 공정·투명한 집행능력을 가진 제3의 기구로 하여금 지역 언론 발전기금을 관리케 해서 지역 언론인의 자질향상과 지역 언론의 생존·발전을 꾀하는 방식을 시도해 봄직하다. 지역 언론사와 지역 언론인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우리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지역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알고, 말하는 권리의 실현은 행복할 수 있는 최소장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