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디트뉴스   김선미 기자

대전KBS 생생뉴스 진행자 김점석 기자의 <김점석 언론자료 소장전>

23일까지 대전대흥동프랑스문화원

 

“酒 ․ 色 ․ 金을 따르는 기자에게는 정의를 바랄 수 없다.” 춘원 이광수의 일갈이다. 비록 친일시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그지만 기자라면 쩌릿쩌릿 폐부를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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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여 우리는 퇴각을 모르는 전위의 투사다. …삿삿치 파헷쳐 온갖 XX을 백주에 폭로하자…오오 붓을 잡은 자여 위대한 심장의 파수병이여!”-‘筆耕(필경)'의 일부
이게 <상록수>를 쓴 심훈의 시라고?

“당국의 발표가 있기 전에는 보도하지 마시오.” “3/14. 김대중 일본 교토통신 회견 중 대통령 면담 요구. 불가” “3/21. 고리원자력 주민들 불안에 떤다. 불가”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나자 보도를 막는 ‘신문통신 게재 보류 요청에 관한 건’이 발표된다. 광복 후 최초의 보도지침 문건이다. 군사정권 시절, 문공부 칠판에는 분필로 쓴 ‘오늘의 보도지침’이 내걸렸다.

심훈의 격정적인 시 담은 언론전문지, 호외, 보도지침 등

지난 7일은 제57회 신문의 날 이었다. 이를 기념해 신문기자가 아닌 방송기자가 신문과 관련된 언론자료를 공개했다. 이광수도 심훈도 일제강점기에 신문기자였다. 이광수의 갈파와 인용된 심훈의 시 ‘필경’은 우리나라 최초의 언론전문지 철필(鐵筆) 창간호(1930년)에 수록된 내용이다.

 

오는 23일까지 대전프랑스문화원(원장 전창곤) 대흥동분원에서 열리고 있는 ‘기자 너 무엇을 남겼나?’라는 부제가 붙은 <김점석 언론자료 소장전>에 가면 이처럼 희귀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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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연기 자오록하게 피어오르는 신문사 편집국도 엿볼 수 있다. 지금이라도 금세, 붉은 줄이 모눈종이처럼 쳐진 200자 원고지에 푸른 잉크물이 뚝뚝 떨어지는 펜으로 일필휘지 기개를 떨친 민완기자가 바바리코트 자락 휘날리며 뚜벅뚜벅 걸어 나올 것 같다.

오래된 동네의 가정집을 개조한 전시실에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는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에 걸쳐 수집된 언론관련 자료들은 그대로 한국 언론사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전KBS 생생뉴스 진행자 김점석 기자의 생생자료


이처럼 시시콜콜 온갖 자료를 모은 이는 이 방면에서는 이미 유명 수집가인 KBS 대전방송총국 김점석(57) 부장이다. 지난 30년간 월급을 털어 틈 날 때마다 발품 팔며 전국 방방곡곡의 고서점과 경매장을 누빈 결과다. 귀중본을 손에 넣기 위해 때로는 설득하고 5년 간 읍소한 적도 있다. 이렇게 수천 점의 자료를 모았다.

3년 전 방송자료전을 연데 이어 신문자료는 30여년 만에 첫 나들이다. 100여점이 선보인다.

사진2.png 앞서 소개한 희귀자료 외에도 1924년 발간된 최초의 신문이론서 ‘신문학’을 비롯해 8.15 광복 당일 일본 패망 이야기를 했다가 일본군에 연행된 사실을 담은 김사림의 ‘신문기자 수첩’ 영원한 사회부장으로 불린 오소백의 '올챙이 기자 방랑기' 등 한 시대를 풍미하며 필명을 날린 신문기자들의 취재기와 신문관련 서적, 언론잡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의 현장에서 사관의 소임으로 취재한 기록의 흔적들

 

70-80년대 언론탄압으로 자행된 언론인 해직, 검열 등의 흔적도 다시 살펴볼 수 있다. 역사의 현장에서 사관의 소임으로 기록을 마다하지 않은 기자들의 기사와 취재 뒷이야기를 통해 파란만장한 대한민국 역사의 다양한 편린과 그 이면까지도 거대한 퍼즐 맞추듯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서 김기자 만나면 행운, 전시보다 더 재미있는 설명

 

여느 전시장에서 휘익 한 바퀴 둘러보듯 해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꼼꼼하게 하나하나 살펴볼 때 자료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소장자를 만날 수 있다. 전시장을 찾은 날도 김점석 기자는 기다란 지휘봉을 든 채 설명에 여념이 없었다. 유머러스하고 맛깔스러운 그의 설명에 관람객들은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전시는 대전프랑스문화원의 '빠시용(une passion) 시리즈' 의 하나로 기획됐다. ‘정열’이라는 시리즈 제목이 말해주듯 자신의 직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시민들의 작업을 선보인다. 정열과 순수성으로 빚어진 이들의 작업이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때로 전문인들에게까지 신청한 충격과 반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