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리얼미터에서 발표한 4대강 여론조사

MB 정부, 4대강 반발 물타기’ 여론조사 강행반대 높자 덮어라

당시 보도·편집국장 뒤늦은 양심고백 국정원 등 개입·경영진 압력 있었다

“경영진으로부터 4대강 여론 반전 위한 여론조사 명령을 받았다. 또 그 대가로 국정원 등에서 수억원대의 협찬을 제공하겠다는 제안까지 받았다”

“재정적으로 회사가 어려웠다. 4대강 사업 찬성 입장의 외부 기고 등 경영진 뜻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7년 전 대전을 대표하는 두 언론사의 보도 책임자들의 뒤늦은 진실 고백이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시 정권의 압력으로 인해 4대강 사업 여론조사가 뒤덮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에 대한 편견마저 우려되고 있다.

2010년 당시 국민적 여론은 4대강 찬반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지만 이명박 정부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다. 이로 인해 매년 수많은 혈세가 투입되고 수질이 악화되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7년 전인 2010년 3월 26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4대강사업에 대한 찬반 여론을 조사한 결과, 반대가 49.9%로 찬성 36.7%보다 13.2%퍼센트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지역에서도 앞 다퉈 여론조사를 벌였지만 대구·경북 지역만 찬성(46.6%)이 반대(41.3%)에 비해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반대 여론이 더 높게 조사됐다.

당시 대전·충남 지역에서는 대전일보와 TJB대전방송이 공동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대전·충남 19세 이상 성인 남녀 2천728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통해 응답률 21% 중 찬성 37.1%, 반대 42.9%(표본오차+-1.88%포인트에 95% 신뢰수준)로 반대가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이 여론조사 결과는 두 언론사는 물론 어느 곳에서도 보도되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그 후 7년. 당시 TJB 보도국장으로 여론조사를 담당했던 이인범 대전세종충남기자협회장이 최근 협회보를 통해 7년만의 진실을 고백하면서 그 내막이 드러났다.

2010년 11월 보도국장에 발령받은 이인범 회장은 당시를 “이명박 정권의 최대 업적(?)인 4대강 찬반논란으로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 시끄러울 때”라고 회상했다.

이 회장은 “(보도국장) 사령장을 받은 한 달쯤 뒤 4대강 문제로 시끄러운 여론을 반전시킬 방안을 찾아보라는 경영진의 은밀한 명령(여론조사)을 받았다”며 “그 후 국정원과 국토관리청, 수자원공사로부터 솔깃한 제안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이 제안에는 △신문 1개사와 방송이 공동 여론조사를 실시하라 △비용은 걱정마라 △그 대가로 수억원대의 협찬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포함됐다고 이 회장은 설명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한 경영진의 채근이 이어졌고, 이 회장은 후배기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혼자 총대를 매기로 결정했다. 이후 대전일보와 함께 갤럽을 조사기관으로 선정해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여론조사 결과 대부분의 예상대로 ‘반대’가 높게 나왔다. 국정원과 국토부, 수자원공사가 찬성여론을 만들려고 혈안이 됐음에도 반전에 실패했고, 결국 반발 여론을 잠재우려 무리하게 실시한 여론조사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회장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하자 경영진이 뒤집으라는 명령을 내렸다”며 “하지만 단칼에 거절했고, 조사결과를 사실대로 보도하겠다고 맞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사사건건 보도에 개입하려는 경영진에 맞서면서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며 “결국 4개월 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보도국장 보직 사퇴서를 던졌다. 이는 내 목을 스스로 치는 결단이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함께 여론조사에 참여했던 대전일보 A편집국장도 이 회장과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A국장은 “당시 여론조사는 부국장이 담당했고,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와 보도를 하기 어렵다는 보고를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며 “당시 여러 외부 기관들로 압박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여기에 회사가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밝혔다.

A 국장은 또 “당시 4대강 사업에 대한 지역 여론은 반대가 높았지만 찬성 입장이 담긴 외부 기고 등 경영진의 요청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며 “하지만 편집국장으로서 소속 기자들에게까지 그런 기사를 쓰라고 지시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 당시 대전일보는 4대강 홍보성 기사나 관련 부처의 보도자료 기사가 상당 부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