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1만4404번으로 1위

김여정, 김정은보다 인용 많아

민주당·통합당 각각 8명씩 50위 안에



44.4%. 지난 20일 9대 종합일간지가 1면 제목에 직접 인용을 사용한 비율이다. ‘따옴표 저널리즘’이란 말도 있듯이 언론은 흔히 기사 제목과 본문 등에 인용을 사용한다. 객관성을 담보하는 장치이자 기사의 주장을 강화하는 가장 유용한 방식이라 믿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 전문가들은 해외 언론과 비교해 직접 인용을 사용하는 빈도가 매우 높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인물의 의지나 감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써 인용은 여전히 우리 언론에서 애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2020년 상반기, 언론이 가장 많이 인용한 인물은 누구일까. 어떤 인물의 말이 얼마나 많이 인용돼 기사로 생산됐을까. 기자협회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올해 언론이 어떤 인물에 가장 주목했는지 살펴봤다. 1~6월 각 달마다 3일씩을 무작위로 뽑아 각 날짜별로 가장 많이 언급된 상위 100명의 이름을 추출했고, 총 1800명(6개월×3일×100명)에서 중복된 이름을 제외한 897명의 인물을 추렸다. 이후엔 이들의 말이 얼마나 많이 기사에 인용됐는지 상반기로 한정해 기사 수를 셌다. 그 결과를 아래에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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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역시나! 대통령 및 주요 정치인들, 상위권 대거 포진

올해 1~6월 빅카인즈에 기사를 제공하는 54개 언론사가 가장 많이 인용한 인물은 대통령이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용 건수 1위를 차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1~6월 182일간 총 1만4404번 인용됐다. 하루 79개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위로 상반기 1만996건 인용됐다. 문 대통령의 입인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도 2052건 인용돼 19위에 올랐다.


대통령과 함께 주요 정치인들 역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4위(5647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위(4880건),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6위(3803건), 전 민주당 원내대표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8위(3142건)를 차지했고, 그 뒤를 고 박원순 서울시장(9위, 2699건), 이재명 경기도지사(10위, 2670건) 등이 이었다. 정당별로 따지면 민주당과 통합당에선 각각 8명이 5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21위, 1837건)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25위, 1173건), 손학규 전 민생당 대표(44위, 612건) 등도 50위권 안에 들었다.


대부분 다선 의원 등 중진 정치인들이지만 여러 논란 때문인지 초선 국회의원인 윤미향(47위, 566건)과 최강욱(56위, 336건) 의원도 6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윤미향 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이사장을 지낸 정의기억연대와 관련해 논란이 불거져 그의 말이 자주 인용된 바 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도 채널A와 검찰이 유착했다는 의혹과 관련, 페이스북 등에서 한 발언이 기사에 자주 인용됐다.


◇코로나19 공무원들 높은 순위…김정은보다 김여정 더 많이 인용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난 1월2일을 기점으로 국내에 유입되고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올해 상반기는 코로나19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의 매일 관련 브리핑이 열리며 코로나19 관련 부처 공무원들의 말이 신문과 방송에 자주 인용됐는데, 본보가 조사한 결과에서도 공무원 4명이 상위권에 포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장인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장은 특히 상반기 7375번 인용되며 3위를 차지해, 어느 유명 정치인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권준욱 방대본 부본부장 역시 3319번 인용돼 7위를 차지했고, 보건복지부 장관인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차장은 13위(2419건)를, 보건복지부 차관인 김강립 중대본 1총괄조정관은 22위(1645건)를 기록해 올해 코로나19가 주요 이슈였음을 입증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 전염병연구소 소장도 1~6월 752번(36위) 인용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39위, 685건),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57위, 310건)보다 순위가 앞섰다.


북한 및 외교 관련 일부 인사들도 인용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상반기 2568번 인용되며 11위를 기록했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14위, 2321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30위, 969건) 등도 언론이 자주 인용한 인물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37위, 706건)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32위, 858건)의 말이 언론에 더 많이 인용됐다는 것이다. 지난 4월 20일 동안 공식 석상에서 잠적한 김정은 위원장을 대신해 김여정 부부장이 나섰고, 최근까지 대미·대남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는 점이 요인으로 보인다.    


◇진중권이 왜 거기서 나와? 언론사별로 인용 편차 뚜렷   
수많은 인물 중 정체성이 가장 독특한 인물이 있었으니,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였다. 당·정·청 및 외교안보와 코로나19 관련 인물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중에 진 전 교수는 1~6월 2093건 인용되며 18위라는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이낙연 민주당 의원(20위, 1876건)이나 추미애 법무부 장관(23위, 1340건)보다 더 많이 인용된 수치다.  


특히 진 전 교수의 말은 언론사별로 인용 건수에 편차가 뚜렷했다. 내일신문(3건)이나 파이낸셜뉴스(5건), 한겨레신문(8건), 경향신문(16건)이 진 전 교수의 말을 거의 인용하지 않은 것과 달리 조선일보(276건), 세계일보(236건), 중앙일보(209건), 아시아경제(198건) 등에선 인용 기사가 200~300건에 달했다. 하루 한두 개 꼴로 진 전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는 뜻으로, 진 전 교수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여당 등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