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 회원들이 가야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야산은 충남 예산군과 서산시, 당진군 등 3개군에 걸쳐 들판에 우뚝 솟아 산세가 당당하고 경관이 수려한 서해안의 명산이다. 

[편집자주] ‘충곡의 역사文化산행’=등산+역사文化유적지 탐방+맛집기행

임도혁 대전언론문화연구원 이사장(전 조선일보 충청취재본부장)은 오래 전부터 등산, 사진촬영, 문화재 등에 관심을 갖고 전국을 누벼왔다. 임 이사장은 최근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대전한마음토요산악회’의 산행대장을 맡아 역사문화산행을 기획, 지난 18일 처음으로 경주를 다녀왔다. 임 이사장이 만든 ‘역사문화산행’은 역사문화 유적지 답사와 산행, 지역 맛집까지 하나로 결합시켜 처음으로 시도한 새로운 산행이면서 신개념 여행이다. ‘알고 보면 즐겁다’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앞으로 월 1회 게재한다.

 ❏충남 예산·서산 가야산 석문봉(653m) / 남연군묘·보원사지·마애삼존불 

♠개요

- 일시: 2017년 12월 16일(土)

- 참석인원: 49명

- 코스: 남연군 묘→ 석문봉(653m)→ 공터(종산제)→ 일락산(521m)→ 용현산(개심사 3거리)→ 보원사지. [9km, 종산제 및 유적지관람 포함 5시간30분]

- 주제: 榮華는 짧지만 ‘백제의 미소’는 영원하고…

♠들어가며

최근 1달여 동안 산행 참석인원이 20명 안팎으로 저조했다. 그 바람에 화산(실제 이름이 아니라 온라인 카페에서 통용되는 별칭) 회장님을 비롯한 산행대장과 총무들은 겉으로 크게 표현하진 않았지만 노심초사했다. “김장철인데다 단풍철도 아니고 심설(深雪)산행시기도 아닌 애매한 때여서 늘 그래왔다”라고 자위하면서. 그러나 이번은 종산제와 송년회까지 겸하는 산악회의 연중 큰 행사이다. 10월 중순 출범한 12기 운영진 모두가 참석 인원이 늘어나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다행히도 인원이 늘기 시작해 송년회만 참석한 분 등을 합해 총 49명에 이르렀다. 

  1. 남연군 묘(南延君 墓)

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 5-28.

대형버스에 44명을 꽉 차게 태운 버스는 오전 10시쯤 충남 예산군 덕산군 상가리 마을주차장에 도착한다. 떡, 과일, 나물, 막걸리 등 버스에 싣고 온 종산제 물품을 나누어 진 뒤 출발한다. 400여m 올라가 우선 남연군 신도비를 감상한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길지도 않은 글이건만 오류가 세 개나 눈에 띈다. ①‘조두순이 비문을 지었다’고 썼으나 분명히 비문에는 ‘김병학 撰(찬)’이라고 돼 있다. 당시 조두순은 영의정으로서, 비 설치 총책임자로서 그냥 이름을 올린 것이다. 비의 주인공인 남연군이 왕의 할아버지이며, 흥선대원군의 아버지라는 위치이기에. ②안내문에는 ‘지붕 모양의 이수가 올려져 있다’라고 표현돼 있다. 그러나 비 지붕은 이무기가 조각된 이수(螭首)가 아니라 조선시대 비석의 주류인 방부(方趺)에 팔작지붕 형태의 옥개석(屋蓋石)을 얹은 것이다. ③‘비신에는 큰 글씨로 남연군충정이라 쓰여져 있고’라는 말로 안내문을 끝맺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앞면만 보고 말한 것으로 뒷면까지 합해 ‘남연군충정공신도비명’이라고 써야 한다.

우리 안내문의 수준이 이렇다. 

신도비를 조금 지나면 남연군 묘가 나온다. 남연군 묘 만큼 많은 얘깃거리를 품고 있는 묘가 또 있을까? 흥선대원군이 가야사에 불을 질러 문 닫게 했다는 말을 증명이나 하듯 남연군 묘 아래에는 부서진 돌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묘에 오르자 ‘과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늘 우리가 오르는 석문봉을 주산으로 좌우의 산들이 묘를 병풍처럼 두른다. 소위 말하는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이다. 남쪽은 묘가 그리 높지 않은 고도이건만 시야가 툭 터져 시원하다. 양 갈래에서 내려온 내는 묘 아래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장풍득수(藏風得水)의 형국이다. 그래서 지금도 풍수에 관심이 큰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풍수지리를 모르는 일반인 누구나 지세를 둘러보면 좋은 곳이란 느낌을 받게 되는 곳이다. 사실 주산, 안산, 혈 등의 풍수이론과 상관없이 배산임수란 좋은 위치를 가리킨다. 뒤의 산은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줘 온화하며, 앞의 물은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상의 생활의 지혜가 풍수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찌됐든 남연군묘를 이장한 덕분인지 몰라도 야사(황현의 매천야록 등)의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라는 말처럼 흥선대원군 핏줄에서 2명의 천자(고종, 순종)를 배출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는 망했다. 하지만 이 얘기는 결과론에 입각해 각색한 얘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순창의 광산김씨 김극뉴 묘, 나주의 반남박씨 박응주 묘, 춘천의 평산신씨 신숭겸 묘, 예천의 동래정씨 정사 묘 등 ‘조선 8대 명당’이라는 것도 가문이 번창한 성씨를 거슬러 올라가 결과론적으로 선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남연군 묘(南延君 墓)

독일의 흉악무도한 오페르트(Oppert)란 자가 묘를 도굴해 유골을 탈취해 거래를 하려다 실패한 것을 계기로 천주교 탄압 및 쇄국 정책이 더욱 강화됐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이다. 나는 남원군 묘비에서 또 하나의 역사를 엿보았기에 회원들께 설명을 드린다. 시작 부분의 ‘유명조선(有明朝鮮)’, 끝 부분의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이다. 물론 많은 이들은 1644년 명나라가 망한지 200년이 더 흐른 시점(남연군 묘 이장은 1846년)에서도 유명조선, 숭정(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기원후 운운하는 것은 “국제적인 시류에 어두우며, 명 사대주의의 극치이며, 그러니까 조선이 망한 것”이라며 신랄한 비판을 해댄다. 그러나 나는 그 시대의 사람 입장에서 이해해보려는 입장이다. 사실 최치원이 지은 쌍계사 진감선사탑비에 나오는 ‘유당신라(有唐新羅)의 표현처럼 중국을 앞세우는 표현은 매우 뿌리 깊은 것이다. 그 당시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나라는 과거 자신들을 지배했던 영국을 중심으로 영연방에 가입해 있고, 이것도 모자라 영국 여왕을 국가 원수로 삼고 있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심지어 일부 영연방 국가 국기에는 영국 국기 ’유니온잭‘이 한 구석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은 과거 800년 동안이나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그렇다면 스페인 국민들은 이슬람 통치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여 서력 대신 이슬람력을 쓰며, 이슬람 말을 하고, 이슬람 옷을 입어야 옳은 것인가? 당시 조선은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청에게 항복했으나 조선의 지배층인 사대부들은 200년이 지난 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청에게 굴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청을 거부한다는 의미로 숭정기원후를 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15일 베이징대학교에서 한 연설에서 “한국도 작은 나라이지만 책임있는 중견 국가로서 중국몽에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노영민 중국대사는 시진핑 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고 쓴 것도 비슷한 논란거리이다. 알다시피 우암 송시열에 의해 화양동계곡에 만들어진 ‘만동묘(萬東廟)’는 만절필동에서 나온 말이다. 만동묘는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 신종, 의종 두 황제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이 일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 석문봉 산행 & 종산제

많은 울림을 주는 남연군 묘를 둘러본 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석문봉까지는 제법 급한 오르막이다. 3km 남짓 되는 정상까지 1시간반 걸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니 사방이 시야에 들어온다. 서해안 바다와 안면도, 그리고 동쪽으로 예산지역에 이르기까지 내포땅이 시원스럽다. 적당히 산에 가리면서도 교통이 좋고 넓고 기름진 들이 있어 살기 좋은 곳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문물이 성한 곳이다. 중국과 가까워 중요한 교역로이기도 했다.

잠시 석문봉에서의 조망을 즐긴 뒤 석문봉을 지나자마자 왼쪽 일락산 방향으로 향한다. 여기서 자칫 오른쪽으로 발을 디디면 옥양봉으로 향하게 돼 주의해야 한다. 남연군 묘에서 4.2km 지점 즉 일락산 전방 500m 지점에 이르자, 미리 봐두었던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100명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석문봉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서해안 바다와 안면도, 그리고 동쪽으로 예산지역에 이르기까지 내포땅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작은 사진은 산악회 회원들이 종산제를 지내는 모습.

마침 제상을 펼 북쪽에는 김승재 작 ‘산’이라는 시를 새긴 커다란 시비가 있어 종산제 의미를 더해준다.

‘나 오늘, 바람이 되리

무거운 것 다 떨치고 훌훌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산으로 가리…’

매년 시산제와 종산제 행사를 총괄 진행하는 청려장의 지휘 하에 돗자리 위에 각종 제물이 차려진다. 산에서 지내는 것인 만큼 제대로 많은 제물을 올리진 못하지만 정성만은 어느 제보다 크다. 격식도 제대로 차린다. 1년간 무사 무탈한 산행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안전산행 건강산행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오늘 주관 산행대장인 내가 노산 이은상이 지은 ‘산악인의 선서’를 선창하고 회원들이 큰 소리로 따라 외친다. 이어 하늘끝님이 ‘가야산 석문봉 하늘 뜰에서’라는 제목의 축시를 낭송한다.

‘… 나를 오른 만큼 너를 내려와야

옹이진 마음덩이 땀방울로 녹여내야

안개발 구름날개로 산을 넘어설 수 있다는

당신 부름으로 2017년 끝자락

산정에서 제 올리나니…’

커다란 낭송 소리가 가야산 자락을 넓게 휘감는다. 청려장 수석대장은 집사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제를 진행한다. 강신, 참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헌작, 음복, 소지 등 무엇 하나 소홀함이 없이 정성을 다한다. 제를 마친 후에는 가져온 떡과 돼지수육, 막걸리에 라면을 끓여 즐거운 점심시간을 갖는다.

시간이 다소 지체됐다. 편안한 등산로를 지칭한 ‘충곡(필자의 별칭 즉 닉네임)표 꽃길’에 접어들었다. 속도를 높인다. 추운 겨울이지만 산을 사랑하는 회원들은 모두가 편안한 등로에 몸과 마음이 더욱 가벼워진다. 영국의 현대 미술가 줄리언 오피(Opie)는 얼굴 표정을 안 그리고 걷기 자세나 차림으로 분위기를 표현한다. ‘혼자지만 함께’를 느끼는 도회지 풍경이다. 하지만 이는 ‘공허한 함께’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엔 소통이나 공감대가 없이 물신주의(物神主義)에 의한 함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 개개인 모두가 어우러져 자연 속에서 ‘함께’ 걷는다. 이게 등산의 매력이다. 자연과 소통하고, 인간과 소통하는 걷기인 것이다.

스마트폰이 출현한 이후 성장한 요즘 젊은 세대를 ‘아이젠(iGen)’이라고 한다. 애플의 아이폰에서 나온 말이다. 이들 세대는 여럿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가지고 SNS를 통해 소통을 한다. 바로 앞사람, 옆사람과는 대화를 안 하면서. 이들은 자기 방에서 혼자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을 시청한다. 나는 SNS를 통한 뭐 ‘좋아요’식의 소통은 공허한, 울림없는, 껍데기 소통이라고 단호히 믿는다. 우리 산악회식의 때로는 몸을 부대기며, 때로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온·오프라인을 겸하는 ‘O2O식 소통’(Online과 Offline을 함께 하는)이 이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소통형식이라고 믿는다.

*예산·서산 가야산 석문봉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