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 11일, 2012년 MBC의 170일 파업 이후 '사내 질서를 어지럽히고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던 MBC 해직 언론인 6명이 복직했다. 사진은 복직 환영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용마 기자. 이 자리에서 이용마 기자는 촛불시민들의 항쟁을 잊지 말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방송에 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사진 : 오마이TV 유튜브 화면 갈무리)  

 

[편집자주] ‘언론포커스’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언론계 이슈를 다루면서 현실진단과 더불어 언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필진으로 나선다.

MBC, KBS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과제

지난 9월 필자는 파업에 돌입한 KBS, MBC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숙제에 대해 말했었다. 첫째, 공영방송사 이사 구성방식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 둘째, 크게 망가진 방송사 내부의 조직개혁 방안을 마련하는 것; 셋째, ‘공정방송’이라는 파업 핵심주제를 조합원 모두가 비판적으로 공유하는 것.

석 달 넘는 투쟁을 거쳐 이제 MBC 파업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결과로 마무리되었고, 칼날 같은 추위에 아직 파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KBS의 투쟁 역시 올해 안으로 큰 결실을 맺으리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MBC와 KBS 구성원들이 가장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정상화 이후의 정상화’이다.

잊지 맙시다!

파업이 마무리되고 해직 이후 무려 5년여 만에 MBC로 돌아가면서 이용마 기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3가지’를 이렇게 말했다. 1. 촛불시민들의 항쟁; 2.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방송에 담아내야 한다는 것; 3. 지혜를 모으는 문화방송 공동체의 건설. 촛불의 힘이 파업을 지탱해주는 강력한 뒷배였고 그 촛불의 뜻을 프로그램으로 녹여내며 그것을 수행하는 주체로서 망가진 방송조직을 다시 세우는 지표로서 잊지 말아야 할 것 3가지. 아름다운 말이며 참으로 막중한 선언이고 튼튼한 결의가 아닐 수 없다. 조합과 조합원 전체의 이름으로 내건 다짐이 아니라는 게 아쉽지만….

돌이켜보면 이제 30여 년을 막 넘기는 언론노동운동은 대체로 스스로에 대한 배신, 사회에 대한 배신으로 귀결되었다. 이는 물론 심한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파업을 마무리 지으며 언론 노동자들은 늘 같은 결의를 다졌다. 우리의 싸움과 우리의 뜻을 화면과 지면에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그러나 언론노동운동의 역사는 그러지 못했다. 시민들이 공간을 만들어 주었을 때만 비로소 언론 노동자들은 언론 노동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말할 나위 없이 그 상황에서도 심지어 수구꼴통들과 한통속이 되어 왝!왝!거리는 자들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하지만 말이다.

할 수 있을까?

KBS에서 일하는 나의 절친이 얼마 전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고향으로 가는 다리는 끊어졌고…’라는 제목의 매우 무거운 이야기였다. “이 파업이 끝나면 우리들은 주어진 과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을까? 이미 구체제에 익숙한 삶의 방식을 깨고 새로움을 수용할 수 있을까? 고대영 체제는 한국사회와 언론이 살아가는 ‘구악체제’의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이는 곧 해체를 의미한다. 우리들 모두에게도 해체의 과정이 다가올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혁명적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여의도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고향은 고향이되 옛날 고향이 아니다. 이제 다시는 (이전의)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며 우리는 다시 고향에 돌아가려고 싸우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일전을 끝내고 다시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벗에게 물었다. 혹 이번 파업투쟁 과정에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떤 형식이 되었든 조합원들이 토론하는 과제를 수행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집회·시위·선전전 등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겠으나 이 막중한 과업을 토론·공유하지 않을 때 파업 이후, 곧 정상화 이후의 정상화 작업을 어떻게 시작할 것이냐고…. 그의 답은 이제 시작이라고 하였다.

정상화 이후의 정상화

또 다른 절친은 이렇게 말했다. 혹시 “예전처럼 하면 시청자들이 돌아올 거라는 인디언 기우제 같은 믿음이 지금 파업을 하는 동료들에게 있지는 않은지…. 제작 자율성과 예전의 다큐에 대한 기억으로 이전의 영광이 돌아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오히려 건강해야 할 논의에 장애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브랜드를 놓치고 우선순위를 잊은 채 각자가 만들 생산품에만 집중하면 다시 제자리걸음을 하게 될 것이 뻔한데….”

새로운 출발은 결코 쉽지 않다. 지금껏 하지 못했던 것을 풀어놓는 것은 절반의 성취이다. 부역자들을 응징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9년여에 걸친 수치와 냉소, 모멸의 시간을 드높은 도약을 위한 원동력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우선 MBC와 KBS 구성원들은 깊이 묻어두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서로 강하게, 자주, 빈틈없이, 솔직하게 나누어야 한다.

김평호(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