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영향력 약할수록 진보, 강할수록 보수성향…지분 분산이 민주적 의사결정 보장, 광고주로부터 독립도 중요


“여긴 하나의 태양이 계속 떠있어. 지지 않는 태양.”


중견 기자는 지금의 사주를 ‘태양’으로 표현했다. 지지 않는 태양 아래선 태양이 비추는 곳만 바라봐야 했다. 전 직장은 3년마다 한 번씩 태양이 바뀌는 곳이었다. 그곳에선 사내갈등도 심했지만, 적어도 보도공정성과 사장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태양에 따라 보도논조도 달라지곤 했다. 여기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태양을 거스르는 순간 말라 죽는다.


오래전부터, 기자들 사이에선 태양에 맞서는 방법이 논의됐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언론학자 손석춘은 <죽은 언론 살리기>(1995)에서 “신문 단일 노조가 결성될 경우 언론 자본의 이윤증식 논리에 따른 증면을 비롯한 무한 경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으며 보도 감시 활동에서 자본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며 일종의 ‘조중동 단일노조’를 제안했다.


태양을 없애자는 주장도 나왔다. 유한호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같은 책에서 “가족소유제와 형식적 주식회사 제도를 철폐하는 방법은 입법수단을 동원해 언론기업의 기업공개를 강제해 주식을 다수에게 분산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자유 침해 논란이 불가피한 급진적 주장이 나올만큼 ‘족벌언론’의 폐해는 심각했다.


▲ 기자들은 '사주'라는 태양을 마주한다. ⓒiStock


이상기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사 소유구조 변화와 저널리즘의 질>(2003)에서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언론사 소유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이들 가운데 사유재산권 보호라는 시장의 기초적 원칙조차 깨뜨릴 수 있다는 입장에 선 이들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비상장주식회사를 상장주식회사로 강제할 수단은 없다.


대신 이상기 교수는 ‘바람직한 태양’의 모습을 소개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을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 당시 기자들을 전폭 지지했던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이다. 이 교수는 “보도내용이 엄청난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켜 언론사에 압력이 미칠 것이 예상될 경우, 언론사주의 신속한 의사결정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언론사주들의 ‘신속한 의사결정’은 대개 군부독재 찬양, 시국사건 왜곡보도, 근래에 들어선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식 보도나 김영란법 관련 보도에서 드러나곤 했다.


막강한 신문사주의 힘, 분산이 답이다


기사를 작성할 때마다 사주의 지시가 내려오진 않는다. 그러나 사주의 ‘아우라’는 매번 기사의 '리드'를 감싼다. 송고 직전까지 사주를 염두 하지 않고 쓸 수 있는 기사는 없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언론사에서 발행인을 겸직한 사주의 힘은 막강하다. 그 힘은 때때로 공공의 이해와 괴리된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 신문의 소유방식이 족벌소유-소유·경영·편집의 일체화-매체복합소유-비관련 사업의 확장이란 특성을 갖고 있고, 이는 언론재벌화와 권력화로 귀결된다며 언론개혁의 방향은 궁극적으로 소유구조 개선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같은 프레임(개념틀)은 지금껏 언론개혁운동의 토대가 되고 있다.


사주 없는 언론은 없다. 다만 사주가 누구냐, 사주의 영향력을 통제할 수 있느냐에 따라 언론사 논조는 달라진다. 사주의 힘이 분산된 언론, 공적 목적을 추구하는 사주가 존재하는 언론은 상대적으로 언론자유를 누린다. 이 자유는 보통 정치·자본권력에 대한 비판보도로 이어진다. 영국 ‘가디언’, 미국 ‘뉴욕타임스’, 독일 ‘슈피겔’, 프랑스 ‘르몽드’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언론사다.


▲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언론사 소유구조의 핵심 쟁점이다. ⓒiStock


반면 사주의 영향력이 강한 언론사는 보도에 있어 명확한 성역이 존재한다. 예컨대 태영건설의 윤세영 회장이 최대주주인 SBS미디어홀딩스가 34.72%를 소유한 SBS에서 태영건설 비판보도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광주매일(남양건설), 광주일보(대주주택), 영남일보(동양건설), 중도일보(부원건설), 중부일보(대림건설)처럼 대주주가 건설사인 경우 토목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책을 비판하기란 역시 쉽지 않다. 한국언론재단이 발간한 <지역신문경영실태>(2007)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신청한 79개 지역신문사 중 개인이 최대 주주인 신문사는 69개사로 87.3%에 이르렀다. 이 같은 소유구조는 지역신문의 낮은 신뢰도, 불공정성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경제는 현대자동차(20.55%)를 비롯한 190여개 기업이 주주인데 주주의 대부분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이다. 한국경제는 최근 불거진 ‘어버이연합게이트’와 관련,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수억원의 활동비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거의 보도하지 않으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주의 정치적 성향과는 별개로 일방지시에 의한 암묵적 동의구조는 언론사의 권위주의 조직문화를 강화하고 수직적 지면제작을 합리화한다. 이 경우 언론자유는 오직 ‘사주의 자유’로 귀결된다. 이는 사주가 ‘대통령’인 공영방송이나 국가기간통신사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회(30.77%), KBS(27.77%), MBC(22.3%)가 소유한 곳으로, 사실상 정부가 사장을 임명한다. 공영방송 KBS는 정부소유 100%, MBC는 정부여당이 과반 이상의 이사를 임명하는 방송문화진흥회가 70% 소유하고 있다.


YTN도 한전KDN(21.43%), 한국인삼공사(19.95%) 등 공기업이 주요주주로, 정부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권이 바뀌면 당장 KBS-MBC-YTN-연합뉴스의 논조가 바뀌게 된다. 이처럼 소유구조와 논조는 직접적 관련이 있다. 언론운동진영의 지상과제가 소유구조 개선인 이유가 여기 있다.


사주가 바뀌면 논조는 달라질 수 있다


답은 사주의 영향을 최대한 분산하는데 있다. 과거의 연구는 언론사 소유구조와 논조와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고 있다. 2013년 ‘언론과학연구’에 실린 논문 ‘의견지면을 통해 본 한국 신문의 정파성 지형’(김동윤, 김성해, 유용민)에 따르면 연구진은 2011년 11월 일주일간 주요일간지 의견지면을 분석한 결과 “우리사주형(한겨레, 경향)은 민주, 평등, 정의 등 진보적 가치를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난 데 비해, 법인소유형(한국, 문화, 중앙)은 효율, 경쟁, 성장 등 자본과 시장이 요구하는 가치에 치우쳐 있다”고 해석했다.


연구진은 대립되는 입장을 기사에서 전혀 다루지 않는 비중이 법인소유형에서 41.9%로 가장 높았고, 가족소유형(조선, 동아)이 31.9%, 우리사주형이 20.8% 순이었다고 소개하며 “우리사주형 신문사들이 덜 정파적으로 자기주장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원주주인 한겨레와 경향신문처럼 소유가 분산될수록 편파보도란 비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다. 현행 9명(MBC), 11명(KBS)인 공영방송 이사 수를 독일 공영방송 ZDF(77명) 수준으로 대폭 늘려 이사들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소유구조 개편이 논의되는 것도 소유를 분산시키는 흐름이다.


1998년 재벌그룹 한화로부터 벗어나 우리사주제도(종업원 지주제)로 편집권 독립을 이뤄낸 경향신문은 소유구조변화로 논조가 바뀐 대표적 언론사다. 2015년 언론연감에 따르면 경향신문은 임직원(39.12%)과 회사보유 자기주식(36.04%) 비중이 높은 사원주주회사다. 2002년 고려대 석사논문 ‘언론사 소유구조 변화와 내적 통제인식에 대한 연구’(조성환)에선 한화그룹 시절을 거친 144명의 경향신문 기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한화와 분리 이후에 사주와 사장의 영향력이 현저히 감소한 대신 부장, 평기자, 노조, 독자의 영향력이 증대됐다”고 지적했다.


▲ 언론재단 연구서 '소유구조 변화와 저널리즘의 질' 가운데 일부.


2003년 언론재단 연구서 <언론사 소유구조 변화와 저널리즘의 질>에선 소유구조변화를 경험한 경향신문, 대한매일, 문화일보 기자 435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세 곳은 사원주주제 형태로 소유구조가 변했고, 당시 두 신문사는 편집국장 직선제를 도입한 상황이었다. 이들은 소유구조변화 이후 임금수준(70.2%), 취재여건(65.8%)이 더 나빠졌다고 답했으나 공공보도(81.7%), 칼럼(61.8%), 비평(60.6%) 기사가 좋아졌다고 자평했다.


소유구조변화 이후 업무수행의 자율성이 증가했다(60%)는 답변은 높았고, 자율성이 하락했다(3.5%)는 답변은 낮았다. 경영진의 부당한 지시는 이전에 비해 줄었다(51.3%)는 대답이 다수였다. 소유구조 변화가 기사보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선 긍정적(81.1%)이란 응답이 매우 높았다. 논조 변화의 주된 이유는 기자들의 인식변화(35.7%), 사주의 간섭 소멸(26.4%)이 꼽혔다.


그러나 사원주주는 만능이 아니다


하지만 사원주주제를 비롯한 소유권의 분산이 만능은 아니다. 광고주에 의한 자본의 종속 때문이다. 이상기 부경대 교수는 “언론사 소유구조가 저널리즘 성격을 규정하고 뉴스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인이지만 유일한 결정변인은 아니다”라고 지적한 이유다. 경향신문의 경우도 한화로부터 분리 이후 광고주가 편집권을 위협하는 최대요인으로 부각되었으며, 만성적 재정불안과 종합일간지 최저 수준의 임금하락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관련 심영섭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신문과 방송> 5월호 기고에서 독일 슈피겔의 혁신보고서를 소개하며 “슈피겔의 1대 주주는 사원조합이다. 사원조합의 막강한 영향력은 경영진으로 하여금 통합 경영을 위한 경영전략을 수립하지 못하도록 제약했다”고 지적했다. 사원조합이 신문사 논조에는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경영면에서는 부정적 측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상기 부경대 교수는 “제도적 힘으로 언론사 소유구조가 달라져도, 기존 시장질서가 있는 한 언론 상품의 급격한 변화는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주가 바뀌어도 독자 대부분이 보수논조를 선호하는 한 재정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논조 변화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에는 비영리언론기관의 확산에 기대를 거는 이가 늘고 있다. 한국에선 ‘뉴스타파’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미디어경제학자 줄리아 카제는 최근 출간한 ‘미디어를 구하라’에서 비영리언론기관의 활성화가 저널리즘을 견인할 해법이라 주장하며 정부가 언론사에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영리언론기관이 운영하는 신문사에 후원금을 내면 자선 단체 기부금과 마찬가지로 소득공제 대상이 되는 식이다. 이 같은 혜택은 언론이 공공재라는 인식이 선행돼야 논의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 소유구조 변화만으로 언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순 없다. ⓒiStock


반론도 있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모든 광고주를 자본가라고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온다. 광고가 갖는 긍정적 의미를 살리면서 사주가 경영에 간섭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탐사보도에 특화된 비영리언론기관은 (현실적 모델로) 가능해보인다”고 밝히면서도 “지금의 광고 비즈니스모델을 정상적으로 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언론사주의 교체가 여러 차례 존재했다. 사세가 기울어 사주가 경영권을 스스로 넘기는 고전적 경우부터 기자들이 사주를 배임혐의로 고발해 구속시키고 법정관리를 신청해 사주를 교체했던 2014년 한국일보의 경우도 있었다. 또는 기자들 다수가 사표를 내고 공적 소유구조를 기반으로 아예 언론사를 직접 창간했던 2007년 시사인의 경우도 있다. 모두 소유구조 개선의 상징적 사례인데, 내부 언론노동자들이 편집권 공유와 공익 실현을 위해 직접 소유구조개선 투쟁에 나서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쉽게 따라 하긴 어렵다는 의미다.


언론의 자유는 대개 언론 소유주의 자유에 그친다. 그러나 언론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언론은 본질적으로 소유구조에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소유구조만으로 언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순 없지만 언론권력을 소수가 독점하는 구조를 바꿔낼수록 사회에는 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자들 입장에서도 온 세상의 생명을 평등하게 잉태하는 태양을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