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사, MBC가 ‘법치사회를 부정하며 방송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을 벌인 직원들을 해고하는 등 무더기로 징계했다가 최근 1심에서 모두 무효라는 판결을 받은 MBC(문화방송)이 자사 보도와 신문 광고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판결을 반박하고 나섰다.

MBC는 2014년 1월 20일 <조선일보>, <매일경제>, <문화일보> 1면에 “방송의 공정성은 노동조합이 독점하는 권리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실었다. 문화방송은 2012년 파업에 참가한 44명에게 해고·정직 등의 징계를 내렸다가 17일 징계 무효 소송 1심에서 패소했지만 자사의 뉴스와 광고를 통해 판결에 반발하고 나선 모습이다.

먼저 MBC의 이런 대응방식은 법치사회를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1심 판결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경우, 항소를 통해 2심 재판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자사의 뉴스시간을 통해 판결을 비판하고 나아가 거액을 들여 광고로 판결을 부정하는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법치사회의 근간을 해치는 잘못된 대응이다. 만약 판결에 불만을 품은 개인이나 조직이 이런 식으로 모두 대응한다면 사법부는 무력화 될 것이고 법치사회는 무너질 것이다.

문화방송이 신문 광고로 내세운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불법파업”, “이익단체인 노동조합은 공정방송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당시 파업은 대표이사 퇴진이 주된 목적”과 같은 주장들은 이미 재판과정에서 반복된 것들이다. 이런 사측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분명한 해석을 정리했다.

판결문에서 방송의 공정성에 대해서 “방송 결과가 아니라 방송 제작·편성 과정에서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이 이뤄졌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경영진이 ‘공정 방송’을 위해 마련된 내부 절차와 제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점을 밝히면서 이에 반발한 노조의 파업을 정당한 행위로 본 것이다. 여기에 불만이 있고 해석이 다르다면, 2 심에서 다투면 될 일이다.

이해당사자인 MBC가 뉴스를 통해 이런 판결을 비판하는 것은 ‘이해상충의 원리’ 측면에서 불공정보도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게다가 신문광고까지 내고 김종국 사장이 임원회의를 통해 보도자료까지 내는 것은 사실상 재판을 무력화하는 횡포에 가깝다.

이명박 정부는 MBC를 몰락시켰다. ‘낙하산보다 더한 낙하산 사장’이라는 오명으로 끝내 스스로도 해임당한 김재철 전 MBC 사장의 징계권 남용은 결과적으로 충신들을 역적으로 오명을 붙여 몰아내는 폭력이었던 셈이다.

MBC의 명예로운 전사들, 정영하, 최승호, 이용마, 박성호, 강지웅, 박성제...해고라는 중징계의 칼을 맞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얼굴들은 공정방송을 위해 노력한 용감한 언론인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중징계를 당한 44인의 희생과 노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인 모두가 잊어서는 안될 언론계 선진화의 기념비적 사건을 만들어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4부(재판장 박인식)는 방송의 민주화를 진척시키는 진일보한 내용을 판결문에 담았다.

“...일반 기업과 달리 방송사 등 언론 매체의 경우,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회사가 인사권을 남용하는 등 방송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이를 막기 위한 파업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처음으로 ‘공정방송을 요구한 파업이 언론사의 근로조건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이를 정당화 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경영진의 인사권 남용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해칠 경우 이를 막기 위한 파업을 불법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명판결이다.

사실, 이 판결은 대단히 이례적이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방송법 전체를 꿰뚫는 핵심 어휘는 바로 ‘방송의 공정성’ 보장이다. 방송의 불편부당성, 객관성, 책임감, 공정성, 중립성, 정치적 독립성 등 수많은 조항과 법규들도 한마디로 따지고 보면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말의 성찬이다.

그러나 한국의 미디어에서 인사권 남용으로 편집권이 훼손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고 이에 저항한 언론인들은 해고 등 중징계의 칼날에 쓰러져갔다. 명분은 숭고했으나 희생은 개인과 그 가족의 몫이다.

이번 판결은 MBC의 공정성과 명예를 사수하기 위해 희생당한 해고자들의 눈물을 닦아준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시 이런 징계권을 남용한 김재철 사장과 그 핵심참모들에게 던지는 교훈의 의미도 갖는다.

사장에게 징계권이 주어졌다고 해서 그런식으로 남발하게 되면 MBC가 만신창이가 된다는 사실은 세월이 흐르면서 확인된다. 법원의 판결은 ‘방송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이를 막기 위한 파업은 정당하다’고 했다. 직원들은 방송의 공정성을 보호하기 위해 파업까지 나서는데, 이를 함께 수호해야 할 사장은 무엇을 위해 징계권을 남용했던가. 이 부분은 훗날 백서를 만들어서라도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이다. 제2, 제3의 김재철은 공영방송사일수록 줄을 서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은 매우 상식적인 사실을 명백하게 했다. 방송의 공정성은 어떤 경우에도 훼손될 수 없다는 것. 이런 위험성이 있을 때 저항하고 파업하는 것은 ‘근로조건’에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모든 언론사 경영진은 이번 판결의 의의를 존중해야 한다. 언론에서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 노력은 단순히 막연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 근로조건이며 이를 훼손하려는 시도는 불법이며, 이를 저지하려는 노력은 파업까지도 정당할 수 있다는 점을. 기자와 PD, 아나운서 등 모든 언론인들은 이번 판결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 어떤 언론사 사주도 편집권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이를 막는 것은 모든 언론인의 기초적인 근로조건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미디어오늘.